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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2024년 10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독립신문』을 발행하여 독립투쟁을 이어갔다. 『조선독립신문』도 『자유 벨기에』와 같이 3·1운동 당시 지하 신문으로 발간되어 독립운동의 소 식을 전달하고 독립투쟁을 이어가 는 데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3·1운 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을 때 『조선독립신문』은 놀라운 전파력 으로 민족독립과 자유에 대한 열망 과 독립운동의 상황을 알리는 매체 였다. 『조선독립신문』을 읽은 독자 들은 독립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민족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만세시 위 대열에 적극 참여하였던 것이다. 특히, 제2호와 제3호에 실린 국민 대회를 개최하여 대통령제의 임시정부를 조직할 것 이라는 기사는 독립국가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더욱 독립투쟁에 매진할 수 있게 하였다. 3·1운동 당시 벨기에의 언론들은 한국 독립운동 을 강력하게 지지하여 주었다. 예를 들면, 브뤼셀에 서 발간되는 『푀플(Peuple)』이라는 잡지에는, 3·1독 립선언과 파리위원부의 활동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 고 한국 독립을 지지하였다. 그리고 『앵데팡당스 벨 주(Indépendance Belge)』에는 한국의 자유와 독립 을 가져다 주어야만 한다고 했으며, 『르 수아르(Le Soir)』는 한국민들이 다른 민족과 동일한 권리와 이 익을 누려야만 한다고 했다. 1927년에 개최된 세계피압박민족대회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약소민족과 무산계 급의 협력 도모, 전 세계 피 압 박 계급과 민족들의 생존권 보 장, 민족의 자유와 인류 평등을 실현한다는 목적으 로 ‘세계피압박민족대회’가 개최되었다. 세계피압 박민족대회는 1927년 2월 10일부터 15일까지 브뤼 셀에 있는 에그몽 궁전(Egmont Palace)에서 열렸 다. 원래 이 대회는 ‘제국주의와 민족 독립을 위한 연 맹(Liga gegen Imperialismus und für nationale Unabhängigkeit)’이 1926년 8월 베를린에서 대회 를 개최하려고 했으나, 식민지 민족대표의 불참으로 연기되었다. 그러다가 1927년 2월에 벨기에 브뤼셀 에서 세계피압박민족대회가 개최되었다. 세계피압박민족대회에는 21개국에서 174개 단 체의 대표단이 참석하였다. 이 대회의 위원장은 영 국인 조지 랜즈버리(George Lansbury), 부위원장에 핌멘(Edo Fimmen)·뮌첸베르크(Willi Münzenberg), 사무총장에 샤토파디아야(V. Chattopadhyaya) 등 세계피압박민족대회에서 한국 대표단 은 당시 각국 대표에게 『한국문제(The  Korean Problem)』라는 선전 책자를 배 포하였다. 위의 책자는 당시 이 대회에  참여했던 이의경(이미륵)이 소장했던 것 이다(독립기념관 제공). 세계피압박민족대회 신문기사(『조선일보』  1927년 3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