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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➊ •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㉛ 103 건이라는 주장은 일찍부터 제기 되어 왔다. 지난 2025년 진실화 해위원회에서도 국회프락치 사건 당사자 김옥주·김병희 의원의 유 족이 낸 진실규명 요청에 대해 사 건이 조작되었음을 인정하는 조 사 결과를 발표했다. 반민특위기 념사업회는 ‘국회프락치 사건 진 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통한 진상 규명과 사법부의 재심을 통한 근 본적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조선여자교육회관과 근화학원 터 청진동(217번지)에는 1920년 에 결성된 조선여자교육회의 회 관과 1921년에 출범한 근화학원 이 있었다. 기금을 모아 1921년 에 마련한 청진동 회관은 35간 이 넘는 기와집이었다. 회관 마 련을 주도한 차미리사(車美理士, 1880~1955)는 배화여학교 사감 으로 있던 1919년 9월에 종교예 배당 종집을 빌려 여자야학을 시 작했고, 부녀대중교육을 벌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조선여자교육회 와 근화학원을 조직했다. 조선여 자교육회는 1921년 6월 10일부 터 10월 10일까지 4개월간에 걸 쳐 13도의 73개소에서 순회강연 회도 개최했다. 이 순회강연회는 지방여성의 각성은 물론 사회전 반의 각성을 촉구하는 의미도 담 고 있었다. 조선여자교육회와 근화학원은 1924년 12월에 안국동으로 이전했 고, 이후 이 자리에는 조선여자청 년회와 조선여자학원이 이전했다 . 1918년의 종로심상고등소학교 운동장 ‘소요사태’ 경성종로심상(尋常)고등소학교 는 일본인 자녀를 위해 1911년에 건립된 학교이다. 1918년 경성종 로심상고등소학교 운동장에서는 이른바 ‘조선인 소요사태’가 있었 다. 조선총독부는 쌀값 폭등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구제회’를 설립하고, 그해 8월 28일 경성종 로심상고등소학교 운동장에서도 염가판매소를 설치하여 구제활동 ➐ ➐ 국회프락치사건으로 현역 국회의원 체포소식을 전하고 있는 『경향신문』 기사 (1949.6.23) ➑  청진동에 있던 조선여자교육회관의 개관식 장면(『동아일보』 1921.10.10) ➒  종로심상고등소학교가 있던 자리에 세워져 있는 ‘종로초등학교’ 표석 ➓  ‘대한매일신보 창간 사옥 터’ 표석(종로구 수송공원 북편) ➑ ➒ 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