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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동남아지역에서의 한국독립운동 103 세 이파월(Powll Lee) 중위를 만났다. 이파월 중위 와 한인동맹회는 아직도 필리핀에 잔존해 있는 일본 군에 속한 한인 청년들을 투항시키게 되었다. 일본 군대를 탈출하던 한인 청년들이 일본군에 의해 사살 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탈출한 한인 청년들은 일본군의 상황을 미군에 보고하여, 미군이 일본군을 소탕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인동맹회의 목적은 중국 충칭의 대한민국임시 정부를 지지하고, 일제를 타도하며 조국의 광복운동 을 하는 것이고, 재필리핀 한인들의 친목을 도모하 는 것이었다. 미주의 대한인국민회가 광복운동을 촉 진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중앙상무부에 글을 보냈 다. 국민회 중앙상무부에서는 마닐라에 있는 중국영 사관을 통해, 필리핀 한인들의 안전을 요청하였다. 마닐라에서 근무하던 이파월 중위가 미국으로 돌아 갈 때, 박윤하는 대한인국민회 필리핀지방회 설립 의견을 전달하였다. 일제가 정식으로 항복을 선언할 때 마닐라의 한인들은 비록 회원 9명에 불과하지만, 1945년 9월 7일 필리핀지방회 설립을 청원하였다. 그래서 다음날 중앙집행위원회에서는 필리핀지방회 설립을 인준하였다. 필리핀 한인동맹회는 1945년 9월 25일 충칭의 대 한민국임시정부를 적극 옹호한다는 전보를 보냈다. 그리고 필리핀의 한인동맹회는 국민회 중앙상무부 로터 필리핀지방회 설립에 대한 공문을 접수하고, 회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10월 21일 “필리핀 재 류 동포들은 국민회 기치하에서 대동단결을 주장하 고 지방회로서 사명을 다할 결심입니다”라는 답장을 보냈다. 11월 25일 필리핀지방회에서는 특별회를 소집하여 임원을 선출하였다. 집행위원장 박윤화, 서기 김성록, 상무위원 장대길 · 이의창 · 조상복 · 장후 영, 감찰위원 김용신 등의 임원을 선출하면서 정식 으로 대한인국민회가 조직되었다. 그리고 필리핀 재 류동포의 경제 · 사교 · 정치 이상 3대강령 하에서 행정 한다고 반포하였다. 필리핀 한인동맹회 회장 박윤화가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  김호에게 보낸 공문(1945.9.8) 대한인국민회 필리핀지방회 박윤화가 대한인국민회의 김병연에 게 보낸 전보(1945.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