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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경남고성에서가난한농부의아들로태어나서국민학교를졸업하고농사 일을돕다가스무살에인천으로상경하여합판공장에서공장생활을시작하였다. ’93년 경인운수의 전신인 영화교통에 입사한 동지는 명랑하고 온순한 성품으 로 대인관계가 원만하여 주위에는 항상 사람으로 넘쳤고 그 중심에 있었다. 또한 입사 초부터 노동조합의 대의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회계감사를 역임하며 노 조간부로서 활동하는 가운데 누구보다 노동자의 권익확보를 위해 열성적으로 투 쟁하였다. 특히 택시노동자들의 염원인 완전월급제 쟁취를 위한 민주택시연맹 인천본부 의 65일간의 총파업에 빠짐없이 참석했으며 긴 파업기간동안 동지들이 흐트러지 는 것을 막아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그러나 회사는 9월부터 전격적으로 시행된 월급제를 무산시키고 동지의 활동 을 탄압하고자 혈안이 되어 동지가 200만원이 넘게 입금을 하였음에도 50여만 원을 임금으로 계산하여 실제 30여만원의 급여를 지급하였다. 또한 부당한 불성 실근무 제재와 임의적인 성과급 감산, 개인택시 경력을 축소 조작하는가 하면 급 기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고 동지에게 참석을 통보하였다. 평소 남에게 상처주 는 말을 하지 않았던 동지는“이렇게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회사가 해도 너 무한다”, “회사를 가만히 두고만 봐서는 안된다”며 분개하였고 분신 3일전 노동 조합 사무실에 모여 있던 여러 명의 조합원들에게 부당한 회사의 탄압에 맞서 강 한 투쟁을 전개할 것을 연설하기도 하였다. 결국 동지는 개인택시 수령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 측의 부당한 노동탄압에 맞서기 위해 새벽 0시 30분 경 회사 내의 차고지에서 자신의 차량에 신나를 끼얹고 분신하여 운명하였다. 천덕명 (당시38세)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64년 경남 고성 출생 1984년 20살에 인천으로 상경, 합판공장에서 성실하게 근무 1993년 경인운수(전 영화교통) 입사 1994년 경인운수 노동조합 대의원으로 활동 1996년 경인운수 노동조합 회계감사 2002년 월급제 쟁취를 위한 인천민주택시 총파업에 열성적 참여 2002년 경인운수 노동조합분회 대의원 2002년 11월 22일 사측의 무자비한 월급제 탄압에 맞서 월급제 사수와 인간다운 삶을 위해 분신하여 운명 끝내살리라 |205| |20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신자유주의시기 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