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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2024년 12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로 일을 그만두었다. 그후 김현구는 윤병구에게 갔 다가, 와이오밍주(Wyoming)의 철도 부설하는 일을 하는 등 여러 곳을 전전하였다. 그해 가을 김현구와 함께 온 홍승국·송진헌 3명은 박용만이 있는 네브라 스카주의 주도인 링컨시로 갔다. 박용만은 1909년 6월 초순 해외 최초의 독립군관 학교인 한인소년병학교를 커니(Kearney)시 한 농장 에서 창립하였다. 해외 최초의 군사양성기관인 한인 소년병학교는 학기 중에는 각자 학교에서 공부하다 여름방학 때 입소하여, 평균 8주간의 군사훈련을 받 는 하계군사학교 체제로 운영되었다. 수학과정은 3 년이었다. 덴버에서 학업에 성공한 한인 학생 콜로라도주에는 콜로라도주립대학, 덴버대학 등 여러 대학이 있었는데, 한인들도 이들 대학교에 다 녔다. 콜로라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덴버대학 교 수가 된 ‘정문옥’이 있다. 정문옥은 청년시기인 제1 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육군으로 참전하여 그 공 으 로 시민권을 얻었다. 그는 1924년 콜로라도대학에 서 미균학(黴菌學)과 위생학을 마치고 뉴멕시코 포트 베이야드에 있는 미국정부 부설 병원에서 근무했다. 미국 의과대학에서 세균학과 위생을 공부했기 때문 에, 국내에 들어가 세브란스병원에서 세균학과 위생 학 교수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1928년 콜로라 도 덴버대학의 빽터 알러지 전문과에서 조교수로 취 업이 되어 귀국을 포기했다. 정문옥은 의사로서, 대 학교수로서 조국을 위한 활동을 하기를 원했고, 지 속적인 독립운동자금을 제공하여 독립운동에 일조 하였다. 1942년 독립금 20달러, 1943년 『한국의 사 정』 출판비 44달러, 의무금 10달러 등 계속 독립운 동 자금을 냈다. 또한 하와이 한인 노동자로 이민을 와서 콜로라도 덴버대학 출신으로 화학석사가 가 된 ‘이용규’도 있 다. 이용규는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하와이 사탕 수수농장의 노동자로 왔다. 그러다가 북미로 이주하 박용만의 지도를 받은 김현구가 쓴 박용만 평전, 『우성유전(又醒遺傳)』 덴버에서 박용만이 장인환 · 전명운을 돕기 위해 보낸 의연 금 편지(1908년 9월 6일, 대한인국민회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