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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2023년 11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3월의 전설(96회) 파주의 독립만세시위 매 시위마다 일제 군경 발포로 다수 사상자 발생한 적극적 ‘피의 투쟁’ 벌여 3월 10일 첫 만세시위, 3월 26일부터 30일까지 집중 시위 글 이정은(본지 편집위원, 3 · 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와석면, 구세군 부교 임명애 염규호 부부의 활동 3월 10일 파주 최초의 와석면 시위는 32세의 구세 군(救世軍) 부교(副校, 일반교회 집사에 해당)였던 임 명애(林明愛)가 주도했다. 임명애는 와석면의 교하공 립보통학교 100여 명의 학생들을 운동장에 모아 놓 고 큰 소리로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했다. 이에 학생들 이 호응하여 교정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하 였다. 파주는 한반도 중심에 있고. 한강과 임진강 하구를 끼고 있어 평시에는 삼남지방 조세 등 물자가 서울로 모여드는 길목이고 , 전시에는 파주가 뚫리면 바로 서울이 위협받는 방어상의 요지였다. 파주에서는 3월 10일 첫 만세시위가 있은 후 3월 26일부터 30일까지 사이에 집중적으로 일어났으며 매 시위마다 일제 군 경의 발포로 사상자가 생겼다. 피의 투쟁이었다. 지역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파주군 북부 지도(1918년, 1/5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