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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으로 의병이 전국 각처에서 일어나자 광무황제의 밀지를 받은 시종관 정환직은 아들 정용기에게 의병을 일으키도록 하였다.
아버지 뜻에 따라 정용기는 1906년 3월 산남의진을 결성하고 창의장이 되었다.
그러나 1906년 7월 신돌석부대를 후원하기 위해 북상하던 그는 경주 우각에서 체포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산남의진도 해산하고 말았다. 감옥에서 풀려난 정용기는 1907년 4월 다시 산남의진을 일으켜, 청하·청송·영천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9월 1일 입암전투에서 전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정환직은 아들의 뒤를 이어 산남의진을 이끌었다.
그는 흥해, 영천, 청송 등지에서 활약하다 1907년 11월 6일 청하면 각전에서 체포되어 대구로 압송되었다.
1907년 11월 16일 대구감옥에서 풀려나 영천으로 돌아오던 중 총살되었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