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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하 경무관은 1979년 2월 전남 경찰국장으로 발령됐다. 5·18 당시 학생과 시민의 안전을 챙기는 데 주력했다. 안 경무관은 부하 직원들에게 "분산되는 자 너무 추격하지 말고, 부상자 발생치 않도록 할 것", "연행 과정에서 학생의 피해가 없도록 유의할 것", "화학탄 사용은 가능한 한 억제하고, 학생들에게 가혹한 행위 하지 말고 교문으로 밀어 넣을 것" 등을 지시했다.
신군부는 당시 경찰국장에게, 발포 명령을 내리고 군인보다 경찰이 앞장서라고 지시했지만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며 지시를 거부했다. 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 경무관은 직위 해제됐다. 그는 1980년 5월 26일경 계엄사 합동수사본부로 연행돼 고문을 당했고, 이후 강제로 사직됐다.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던 안 경무관은 1988년 숨을 거뒀다. 그는 생을 마감하기 전 '광주 비망록'을 작성했다.
비망록에는 "(5월) 17일 자정 이후 계엄 확대와 더불어 공수부대가 투입되고 무차별 진압이 시작되자 이에 자극 받은 시민들이 총기를 탈취하고 건물에 불을 지르는 등 사태가 급속히 악화됐다. 광주항쟁의 원인은 ①과격한 진압으로 빚어진 유혈 사태 ②악성 유언비어의 난무 ③김대중 씨의 구속이다"고 적혀 있다. 안병하 경무관은 사후 공적을 인정받았다. 올해 '경찰 영웅'으로 선정됐다. 출처 : 뉴스엔조이 2017.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