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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➊ •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㉛ 101 규(1889~1978)가 쓴 『여운형선 생투쟁사』를 출판하기도 했다. ‘정판사 위폐 사건’ 조작의 피해 자 이관술과 박선숙의 해방서점 1946년 7월 6일, 조선공산당 재무부장 겸 총무부장으로 있던 이관술(1902~1950)은 종로1가 해방서점(解放書店)에서 책 네 권 을 산 다음 샛길로 돌아 나가던 중 종로네거리 화신 앞에서 종로 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었다. 해 방서점은 이관술의 부인 박선숙 (1909~?)이 운영하던 서점이었 다. 박선숙은 광주학생독립운동 을 계기로 벌어진 1930년 1월 15 일의 제2차 서울항일학생시위 때 동덕여고보 학생 대표로 활동했 는데, 일제강점기 이래 사회주의 계 독립운동가로 명성이 자자하 던 이관술은 그해 5월부터 ‘정판 사 위폐 사건’으로 수배 중이었다. 당시 미군정 경찰은 조선공산당 의 활동자금 마련과 경제교란을 목적으로 소공동에 있던 인쇄소 인 정판사에서 위폐 1,200만 원 을 찍어 사용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미군정이 조 선공산당의 위신을 추락시키기 위해 만든 조작 사건이었다. 구속 된 이관술은 억울하게 무기징역 을 선고받았고, 서대문형무소를 거쳐 대전형무소에서 복역 중이 던 1950년 7월에 헌병과 경찰에 게 산내 골령골에서 불법 학살당 하면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지난 2025년 12월 22일, 서울 중앙지법에서 벌어진 이관술의 정판사 위폐 사건 재심 재판에 서 검사의 무죄 구형과 함께 재판부 역시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 발생 79년 만의 일이다. 신간회경성지회 회관 터 청진동(126번지)에는 민족협 동전선인 신간회(新幹會)의 경성 (京城)지회 회관이 있었다. 1927 년 결성 당시에는 낙원동에 있었 는데, 1928년 8월에 대한제국에 서 참정대신을 지낸 한규설이 기 부한 3천 원을 전세금으로 하여 청진동으로 이사했다. 신간회경 성지회는 신간회본부를 뒷받침하 는 핵심지회였다. 설립 당시에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한 용운(1879~1944)이 회장을 맡고 변호사 허헌(1885~1951)이 부회 ➊ ➊ 신용호 창립자의 어록이 새겨진 교보문고 입구의 표지석(이하 현장 사진은 필자 촬영) ➋ 1930년 9월 여학생중심 비밀결사 사건으로 구속된 박선숙의 「일제감시대상인물 카드」(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➌ 정판사 위폐 사건으로 수배중이던 이관술의 체포사실을 전하고 있는 『한성일보』 기사. 종로1가에 있던 해방서점 사진도 보인다 (1946.7.9). ➋ 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