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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독일 베를린지역 한인 유학생들의 독립운동 101 일본은 포츠담선언에 대해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 었으나, 미국은 일본이 항복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미국은 원자폭탄의 파괴력을 과시하면 신속하게 항복할 것으로 보고, 8월 6일 히 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였다. 8월 10일 일제가 포츠담선언을 수락하면서 연합국에 항복을 하게 되 었다. 일제가 포츠담선언을 수용하였기 때문에, 우 리 민족도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되게 되었던 것이 다. 그렇기 때문에 포츠담은 우리 역사와도 깊은 관 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도산 안창호의 베를린 방문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1878~1938)는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기 직전 국내에서 중국으로 탈출하였 고, 다시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왔다. 도산은 북만주 와 연해주 일대를 돌아다니며 독립운동을 모색하다 가,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갑(李 甲)과 작별하고 독일 베를린에 도착하였다. 도산이 1911년 8월 2일 베를린에서 블라디보스토크의 최 만 학에게 보낸 엽서에, “저는 덕국(德國) 경성(京城)까 지 와서 잘 유(留)하나이다. 4244년(1911년) 8월 2일 안창호”라고 하였다. 도산은 러시아 여행 중에 몸이 많이 상하였으나, 베를린에 도착하여 몇 주간 충분 한 휴식을 취하였다. 도산은 베를린대학에서 고전 철학을 전공하는 김 중세의 안내를 받았다. 김중세는 1908년 일본 유학 을 갔다가, 1909년 다시 독일로 가 1923년 베를린대 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독일학계에서 『범 어자전(梵語字典)』을 만들 때, 산스크리트어, 중국어, 파사범어를 대조하여 독일어로 번역하고 마지막에 한글로 발음을 달았다. 한글로 발음을 단 이유는 세 계 각국의 글 가운데, 한글과 같이 완전하게 발음을 표시할 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안창호는 베를린에서 등(鄧)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투숙하였는데, 매우 후대를 받아 작별할 때는 주인 부인과 딸 퓨리다가 꽃다발을 주고 뺨을 맞추었다. 1945년 7월 ‘포츠담회의’가 개최된 체칠리엔호프(Cecilienh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