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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대우종합기계(전 대우중공업)에 입사해 ’87년 노동자대투쟁을 경험하 면서 노동자라는 존재가치를 알게 되었고 오랜 기간 노동조합 간부로서 열성적 인 활동을 해왔다. 동지는 ’89년‘노둣다리’라는 사내 노동자 노래패를 결성하면서부터 노동문화 운동을 앞장서 이끌어가는 주체가 되었다. 노래패 활동은 차츰 단사에서만 머무 는 활동을 넘어 지역의 동지들과 함께 연합건설이라는 목표를 갖게 하였다. 하지 만 당시 자본의 탄압과 공장 이전이라는 문제에 부딪치면서 좌절을 맛보기도 하 였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동지는 연합의 필요성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연대 활동을 강화할 수 있는 사업들을 만들어갔다. 노동문화운동이 노조운동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된 영역이길 바랬던 인천 노동 문화일꾼들의 노력으로 인천노동자 노래패 연대체계는 차츰 독자적인 사업을 창 조해 나갔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동지는‘노둣다리’의 일원으로서, 인천 노동문 화연대체계의 대표로서 활동했었다. 이런 노력 속에서 인천의 노동문화운동은 전국적으로 모범이 되기도 하였으나, 동지의 업무는 늘 과중되어 있었다. 동지는간암말기라는판정을받고기나긴투병생활끝에짧은생을마감하였다. “(중략) 요즘은 거동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어 대우자동차 집회에 몇 번 참석을 하였더니 주 변에서환자가돌아다닌다고난리가아니다. 며칠전오랜만에회사동료를만났더니“아직까 지정신못차리고집회참석한다매”라며걱정어린핀잔을주는것이아닌가. 집에서도아내와 자주말다툼을한다. 또시작이냐고…. 하지만나는내가할수있는만큼의일들을하고싶다. 그것이내가더건강해지는일이라믿기때문이다. (하략)” - 투병기금마련을위한공연‘우리가기다리는봄’을준비하던 동지들에게동지가전한글중에서- 김기욱 (당시39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63년 출생 1987년 6월 23일 대우종합기계(전 대우중공업) 입사 1988년 노래패 노둣다리 결성 및 3대, 9대, 11대 회장 1989년 대우중공업 11대 노조운영위원 1990년~1992년 대우중공업 12대 노동조합 회계감사 1993년~1995년 대우중공업 13대 노동조합 복지실장 1996년 인천지역 금속노동자 노래패연합‘철의 노동자’결성 및 초대회장 1996년~1998년 대우중공업 14대 노동조합 복지실장 1999년 인천지역 노동자 노래패장회의 2대 회장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준) 운영위원 2000년 인천지역 노동자 노래패장회의 3대회장 민주노총 인천본부 문화담당자연석회의 임시대표 전국노동문화일꾼 여름캠프 해방마을 촌장 제13회 인천노동문화제 공동준비위원회 준비위원장 대우중공업 15대 노동조합 대의원 간암으로 판정, 투병생활 시작 2002년 4월 2일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운명 끝내살리라 |201| |20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신자유주의시기 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