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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결사의 각오로 구국진충을다짐하며 이곳 원곡장성 3.1운동 거사의 제일 선봉에 스셨다. 시는 동년 4월 1일 원곡면 소재지에 운집한 천여 군중 선두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하늘 높이 외치다가 장성면으로 진격하여 일제의 식민통치 기관인 면사무소 경찰서 주재소 우편소 등을 산산파괴하고 충화하며 일본인등을 완전 축출하였으니 이는 민족적 설분이요. 독립투사의 개가였다. 연이 슬프도다. 국권없는 국민이요. 적수공권 엇지하랴. 공은 왜적에게 피체되었으니 형언할 수 없는 비인도적인 악형 끝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장장 3년의 옥고를 치루셨으니 시에 공은 36세시였다. 그뿐이랴. 공의 계씨 휘 우필께서도 동거사에 동참 연계되어 3년의 옥고를 동기 형제가 함께 당하시니 이는 일가 전복은 물론이요 주권 잃은 민족의 비애가 않이리요. 근세 조국광복과 더불어 3.1운동 독립유공자로 발탁되시어 서기 1977년 12월 13일 정부로부터 대통령 표창을 계씨와 함게 추서받으시니 이는 민족의 귀감이요. 여산인의 영광이리라. 오호라. 공은 3남 1녀를 남기시고 서기 1965년 을사 9월 15일 서거하시니 배위 선령남씨와 함게 이 곳 만년 유택에 합봉 영면하시도다. 오늘의 번영된 조국에서 엇지 그 공훈을 잊으랴. 서기 1985년 정부의 애국지사 묘소 단장 지원 계획에 의하여 이 비를 세우나니 저자는 박식불문이나 고사 불능고로 감히 사실을 음기케 하노라.
서기 1985년 을축 중추 경주후인 이종두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