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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룡 김동삼 등 동지들과 협력하여 독립군을 양성하는 한편 국내로 잠입하여 군자금 조달에 동분서주하던 중 동년 10월 일경에게 발견 체포되어 1년 6월의 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은 뒤 출옥하여 재거를 도모하시다가 1924년 6월 남만군정서 특파원 김찬규 신태식 등 동지들과 상해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의 지령서 180장을 인쇄하여 서울을 근거지로 삼아 임시정부 모금책이 되어 각처 재산가에 이를 배포 군자금 모금에 심혈을 경주하던 중 1915년 2월 일경에게 발견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또다시 옥고를 겪어야 했다. 선생은 출옥 후 계속 동지들과 지하운동을 전개한 까닭에 일경의 감시가 극심하여 사건때마다 예비검속이란 명목으로 구속되어 혹독한 고문과 악형의 여독으로 1942년 12월 11일 광복을 목전에 두고 서거하시니 오호통재라. 향년 47세이셨다. 광복 후 독립유공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12월 13일 포유 180)을 추서받으셨다. ...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