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page
194 195 commonwealth of Australia 호주 지리학적으로 동남아시아와 긴밀한 관계인 호주는 6・25전쟁에 참전하는 것이 동남아시아에서 공산주의자들의 팽창을 막는 유력한 예방책이라고 판단, 참전을 결정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를 결의하자 곧바로 2척의 해군 함정과 1개 공군 비행대대를 파견했다. 이어 9월 27일 지상군을 파견함으로써 육・해・공군 모두를 6・25전쟁에 참전시켰다. 호주는 당시 1만 5,000명의 병력 중 1개 대대병력을 기꺼이 파견했으며, 1952년 4월부터는 2개 대대가 참전했다. 호주 제3대대는 1950년 9월 27일 우리나라에 도착해 유엔군의 북진단계부터 곧바로 작전에 참가했다. 특히 사리원전투에서 적극적인 백병전을 벌여 후퇴하는 북한군을 격멸함으로써 유엔군의 사기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영유리전투, 박천전투, 가평전투, 마량산전투 등에서 뛰어난 전투 능력을 과시했다. 해군은 항공모함 1척, 구축함 2척, 프리깃함 1척 수준의 전력을 유지하면서 해상 작전을 실시했다. 공군은 당시 일본에 주둔 중이던 제77전투비행대대가 미 제5공군의 작전 통제하에 참전하였고, 이후 1개 수송기 편대가 추가로 참전했다. 호주는 6・25전쟁에서 339명의 전사자와 1,216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는데, 이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희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