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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026년 3월 Column 편집위원 칼럼 작은 소리 큰 울림 어 있었다. 2·8 독립선언은 3·1운동으로 이어졌다. 3·1운동의 의미와 시사점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 었다. 이는 곧 전국 각지의 만세운동으로 확산되었 다. 이른바 3·1운동은 노동자, 농민, 상인, 학생과 종 교인, 그리고 남성과 여성, 노인과 어린이가 함께 거 리로 나섰던 사건이었다. 3·1운동은 특정 계층의 운 동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참여한 민족적 운동이었 다. 이 대중성은 3·1운동을 이전의 독립운동과 구별 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3·1운동은 국내에서 고립적으로 발생한 사건이 아 니었다. 유학생의 선언, 국내 지식인의 준비, 그리고 민중의 자발적 참여가 하나의 흐름으로 결합되며 거 대한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해외 지식인 운동과 국내 민중운동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초국가 적 독립운동이라는 점에서, 3·1운동은 세계사적으로 도 주목할 만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오늘날 3·1운동을 다시 살펴보는 일은 단순한 기 념 행위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독립이 어떻게 사 유되고 준비되었는지, 그리고 누가 그 과정을 이끌 었는지를 묻는 역사적 성찰의 과정이다. 3·1운동의 역사는 경계를 넘어선 역사라고 생각 해야 할 것이다. 국경을 넘은 사상과 선언, 그리고 민중의 응답이 맞물리며 1919년의 봄을 만들어 냈 다. 2·8 독립선언을 기억하는 일은 곧 3·1운동을 더 깊고 넓게 이해하는 길이라고도 생각한다. 독립운 동은 과거의 일이 아니다.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 늘의 민주주의와 시민적 실천으로 이어지는 역사이 다. 한편, 3월 1일은 우리에게 일본을 생각하게 하 는 날이다. 최근 선거 일본 자민당 압승, 한일협력 우선해야 일본은 지난 2월 8일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다카 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전체 465석 가운데 316석을 확보하며 대승을 거뒀다. 일 본에서 단일 정당이 중의원에서 이 정도 의석을 차 지한 것은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지난 1월 14일 일본 나라를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대표적 문화유 적지인 호류지(법륭사)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JTBC 제공).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 2월 8일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승리한 집권 자민당 후보 이름 위에 꽃을 붙이고 있다(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