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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7월31일 목요일 10 (제223호) 종합 광서(匡西) 박진영(朴震英·선조 2년 15 69년~인조19년1641년)은 20대의꽃같은 청춘을 임진왜란 난리통에 보냈다. 그는 역사의 최전선에서 한 치 물러섬 없이 당 당히맞섰다.곽재우,김성일,이순신,권율 등쟁쟁한역사적인물들을만나거나상관 으로 모실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그가 장 년기명청교체라고하는세계사적소용돌 이 속에서 북방을 지키는 무장으로서 큰 활약을 펼쳤으나 공명을 멀리하고 논공행 상에도 참여하지 않아 큰 공에도 제대로 평가 못 받았다. 그러나 경남 출신 김현우 작가 김현우는 장편실록소설 ‘난세의 현 인 광서 박진영’을 지난 4월 말 펴내면서 ‘조선 시대 함안 사람 난세를 통과하며 올 곧고 묵묵하며 거대한 삶을 살았던 그의 삶은 동시에 안타깝기도 했다.’라며 책을 펴낸배경을설명한다. 김현우작가는수천년아라가야의역사 가 숨 쉬는 함주(咸州)의 기개 높은 사람 들이 광서 박 선생과 함께 의병군을 창의 해 분투한 삶을 살피면서 난세의 현 자박 선생의 불온과 극기를 재조명하고자 했다 며이소설은단순한평전이라기보다는선 생의파란만장한생애와난세에어떻게인 의와 지혜로 대처했는지 살피고자 한다. 난세의 소용돌이를 관통하며 선생이 겪은 역사의 여러 장면을 통해 한낱 과거의 일 이아니라현재에도있을법한이야기라고 방점을 찍고 싶다. 선생의 행적을 더 들어 보며 그 시대의 역사를 통해 교훈을 찾는 다면 더 바람이 없을 것 같다. 또 선생의 인 의를이어가는일에조금이라도도움이되 었으면한다고밝혔다. 조평래 함안문인협회 회장은 저자가 관 계되는많은문헌을해석하고현장답사를 거친 후에 쓴 작 품이라 신뢰와 감동을 준 다. 역사소설은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데, 시중에 문학적 허용을 살려 재미있게 만 쓰다 허무한 거짓말이 되어 뷺소 설 쓰 냐?뷻하는비웃음을당하기도한다고전하 고 김현우 작가의 소설 븮난세의 현인 광서 박진영븯은 동시대 함안의 지식인들이 남 긴 문집과 관련 문헌을 섭렵하며 어려운 원전해석과철저한고증을거친후에야집 필되었다. 그래서 소설의 전개가 재미나 속도감 이 다소 떨어지는 듯 하지만 사실 과부합하는정확성과추리력이완벽세밀 하여작가가의도한흥미로운이야기를만 날수있었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인척, 사돈, 사승 등 인간관계, 인문·자연지리 등을 면밀하게 파악한 후 정확하게 묘사하다 보니, 이야 기를 끌고 가는 내면적인 성적 욕망이나 파격적인 허구 등이 적어 조선 중기 함안 의 역사책에 가까운 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고평했다. 박진영 장군은 지금까지 거대하고 올 곧은삶은그가치를걸맞게인정받지못 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에 경남의 맹 렬한 작가 김현우가 쓴 ‘난세의 현인 광 서박진영’은그런박진영의삶을복권한 다.김현우는 경남 문단에서 활동하며 소 설과 아동문학 부문에서 많은 책을 냈는 데, ‘천강홍의장군 곽재우’ ‘편조왕사 신 돈이야기’와같은역사장편소설은중요 한줄기를이룬다. 광서 박진영(1569-1641) 장군은 임진왜 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1637) 및 이괄의 난(1624)등 온갖 국난을 겪으면서 그가 보여준 애국애민(愛國愛民)적 삶은 진정한선비이자지식인임을알수있다. 박진영 장군은 청년기에는 임진왜란에 의병을일으켜크고작은전투에서혁혁한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 2등에 책록 되었 다.특히의병을일으킨시점이4월14일로 새롭게 드러남으로서 최초 의병활동을 한 인물로알려진망우당곽재우장군보다앞 선다는 것이어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 다. 장년기에는 명청교체라고 하는 동아시 아의 전환기를 맞이하여 북쪽 변방을 지키 는 무장으로서 위급에 처한 중국인 수만 명 을 살려낼 정도로 박애(博愛)적 사상을 실 천하여1880년에소현세자(昭顯世子),인평 대군(麟坪大君),삼학사(三學士)와 함께대 명절의(對明節義)의상징인삼황대보단(三 皇大報壇)에배향되었다.그리고이괄의난 을 진압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움으로서 진무원종1등공신에책록되었다. 장군은 자신의 전공(戰功)을 말한 적이 없어 공신 책록에는 언제나 뒤에 있어 사 람들이모두원통해하였으나장군의심성 과사상을엿볼수있다. 박진영(朴震英) 장군의 자(字)는 실재 (實哉), 광서(匡西)는 그의 호(號), 시호 (諡號)는 무숙(武肅)이다. 본관은 밀양으 로중시조는밀성대군(密城大君,휘언침) 의 12세손(시조 42世孫)으로 고려조(高麗 朝)에서 영동정(令同正)을 지낸 박원광 (朴元光)이다. 조선조에 들어와 경상좌도도절제사 박 언충(朴彦忠)은 조선 초기 대제학을 지낸 춘정변계량(春亭卞季良)이그사위이고, 점필재 김종직( 탕畢齋 金宗直)의 부친 강 호 김숙자는 박언충의 아우 박홍신(朴弘 信)의 사위이다. 장군의 5대조 참군 박경 현(參軍 朴景玄)은 무오사화(戊午士禍) 로 인하여 함안 두곡(咸安 杜谷)에 은거 (隱居)하였다. 고조는 징사 박여달(徵士 朴如達)이고, 증조부(휘 榴)는 공조참판 을 지냈다. 증조모 함안이씨(咸安李氏)는 대사헌을 지낸 매헌 이인형(梅軒 李仁亨) 의 따님이다. 조부(휘 宗秀)는 한성부 우 윤을 지냈다. 부친(휘 旿)는 형조판서에 추증되었는데, 유헌 정황과 구암 이정의 문하에서배워성리학에조예가깊어많은 선비들로부터추앙을받았고,함안여양서 원(廬陽書院)에향사되었다. 장편소설븮난세의현인,광서박진영븯펴내 조선중·후기임진·이괄의난· 병자호란등 맹활약한선비이자 무장일대기조명 교지-1649년숭정대부판돈녕부사겸판의금부사오위도총부도총관 시호교지 밀양지역 원로 종친들의 모임 성목회 정기총회가 초복을 맞은 지난20일밀성회관회의실에서개최되었다. 이날 회의는 지난 해 총회에서 코로나19 이후 침체된 모임이 활성화되지 않고 유명무실 해 진다면 해산을 검토해보아야 한 다는 의견이 대두됨에 따라 해산의 기로(岐路)에서 일가 간 정 (情)을 나누는 모임이기에 해산은 있을 수 없다는데 의견이 모 아지면서 존치하고 더 나아가 회원영입으로 활로를 찾기로 했 다. 박희재 회장이 출타 중에 있어 박호정 전 회장이 임시회장을 맡은 가운데 호정 회장은 ‘성목회’는 회원들의 자부심이었다고 말하고 한때 90여명의 회원으로 밀양지역 소모임 중 가장 큰 모 임이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며 여러분의 의견에 따르겠다고 말 했다. 이에 참석자들은 돌아가며 소신을 피력, ‘옛 명성은 못 찾더라 도일가의정이라도함께할수있도록지속하였으면좋겠다.’,‘성 목회는 자부심이었다.될 때까지 해 보자’등 존치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에박부돌총무는잠시나마어리석은생각을하여부끄럽다. 총무로서 최선을 다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면서 응원의 박수 가 이어졌고, 박두완 고문(전 회장)은 오늘 복달음 점심은 내가 사겠다며 종원들을 독려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회의를 마쳤다. 성목회는 1988년 밀양 부북면에서 처음 출발 ‘부북 성목회’로 출발했다.이후 1992년밀양시전체 성손으로확대재편,2013년 9 0여명의 회원으로 늘어나면서 분기별 모임을 갖고. 그 운영에는 경로효친사상이중심이되었다.수시로초빙강사를초청보학등 을연구하고발표하는등여타단체의귀감이되었다. 성목회의복달음행사는20여년전으로거슬러올라간다.호정 전회장과부돌총무,밀양관광故영웅대표등이주축이되어무 더운여름어르신들을위안(慰安)할수있는길이없는지의논하 다 사비를 들여 복달음 행사를 추진하여 오던 것이 몇 해 전부터 는정기총회일로정하고연례행사가되었다. 복날은초복,중복,말복등삼복을말한다.첫번째복날을초복 (初伏)이라 하고,두 번째 복날을 중복(中伏),세 번째 복날을 말 복(末伏)이라 한다. 초복은 하지(夏至)로부터 세 번째 경일(庚 日),중복은네번째경일,말복은입추(立秋)로부터첫번째경일 이다. 복날은 열흘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초복과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린다. 그러나 해에 따라서는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이 되기도 한다.이런 경우에는 월복(越伏)이라고 한다.삼복기간은 여름철 중에서도 가장 더운 시기로 몹시 더운 날씨를 가리켜 ‘삼 복더위’라고하는것은여기에연유한다. 복날에는 보신(補身)을 위하여 특별한 음식을 장만하여 먹는 다. 과거에는 개장국을 만들어 먹는 풍습이 있었으며, 현대에는 닭백숙을 잘 만들어 먹는다.또,팥죽을 쑤어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고질병에도걸리지않는다하여팥죽을먹기도한다. 밀양‘성목회’정기총회성료,1987년창립 성목회정총에서박부돌총무가경과보고를하고있다. 초복기해복달음함께가져 박병희 현종이 고향(영천시 화산면)에 소재하고 있는 임고서원의 (사)포은선생 숭모사업회에 지난 6월 13일 인성교육지 원기금1천만을기탁했다. 1939년가난한농부의아들로태어나많 이배우지못한한을늘가슴에새기며살아 오면서, 고향을 떠나 대구에서 자수성가했 으면서도늘고향을잊지않고살아왔다.200 0년 (사)포은선생숭모사업회 창립 및 임고 서원 성역화 사업에 기여한 박병희 현종은 자라나는 우리 후학들에게 요즈음 점차 퇴 색 되어가는 포은선생의 충효정신을 기리 는 인재양성 예의실천을 교육하는 수강생 에게뜻깊게쓰여지길바란다고하였다. 박병희 현종은 월성대군 후예로 1956년 10월고경면가수서당신장식선생에게수 업을 받으면서 농번기에는 귀가하여 농사 일을돕는등주경야독을이어오다1963년 겨울임고면노항리최동주선생을찾아가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2남 4녀의 자녀교 육을위해대구로이거하였다. 2006년부터임고서원,신녕향교,대구칠 곡향교, 경북 봉화향교, 강원 횡성향교 등 몇몇향교와서원을찾아서배움의터전을 삼고자했다.그리고대구칠곡향교에서경 전을 가르치며 후학양성에 심혈을 기울였 으나 장애를 안고 있어 2022년부터는 간혹 들러 후학들을 지도하고, 현재 (사)포은선 생숭모사업회이사와박씨대구연합회회원 으로선조현창사업에도여념이없다. 지난7일박씨대구연합회선조유적탐방 및야유회에는불편한몸으로함께하지못 한다며 잘 다녀오라며 금일봉을 전달하기 도 했다. 특히 예절이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 기 위한 일종의 사회규범인데 이 약속이 무너지고 사회질서가 혼 탁해졌다며 사재 를 출연하여 ‘알기 쉬운 예의요초(禮義要 抄)’를 2020년 발간 각급단체와 성씨문중 에 배포한바 있다. 한편 (사)포은선생숭모사업회 정동재 이사장과 임원들은 박병희 현종의 기부에 진심어린 감사 의 정표(旌表)로 감사패를 지난달 13일 전달하고,큰 기탁금과 더불어 포은선생의 충효 정신을 기리고 가르치는 평생 학습기관으로 거듭 날수 있도록 최선 을다하겠다고밝히며,이러한기부에더많 은시민들이동참해주실것도잊지않았다. 박병희현종(사)포은선생충효정신기리는교육지원금기탁 뷺예의실천을교육하는 뱛수강생에게뜻깊게쓰여지길뷻 박병희 현종(앞줄○) 지난달 13일 포은선생 숭모사업회에 특별기부금을 전달하고 임원진과 기념촬 영을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