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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을 꿈군 선각자 이현경(1899~미상) 이선경의 친언니로 1921년 3월 1일 3.1운동 2주기를 맞아 일본 도쿄 히비야공원에서 140여 명의 유학생들과 함꼐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사회주의 여성운동과 근우회 활동 등을 통해 조선여성의 해방을 부르짖었고, 동아일보 기자 활동을 하면서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받았다. 1920년대 후반 남편 안광천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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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3.1운동을 이끈 핵심 김노적(1895~1963) 수원상업강습소를 졸업하고 중앙고보에 다니던 중 1919년 수원지역 3.1운동을 주도하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때 심한 고문과 구타로 머리 한쪽에 함몰되고 갈비뼈가 부러져 평생 늑막염에 시달리고 한쪽 팔을 못쓰게 되었다. 하지만 사회운동과 교육운동을 꾸준히 이어가며, 화성학원과 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였고, 신간회 수원지회에 회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