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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2월28일 월요일 10 (제182호) 종합 박씨대종보한빛신문창간15주년 을진심으로축하하며 무궁한발전을기원합니다. 부산본부2018선조유적지탐방길에서.... 박씨대종친회부산본부지부장사무국장일동 서구지부 지부장 박찬훈 사무국장 박주원 동구지부 〃 박효기 〃 박병주 영도구지부 〃 박영우 〃 박기정 부산진구지부 〃 박삼득 〃 박흥재 동래구지부 〃 박근택 〃 박영택 남구지부 〃 박필제 〃 박일영 수영구지부 〃 박희행 〃 박수태 북구지부 〃 박진선 〃 박종철 해운대구지부 〃 박사자 〃 박동춘 사하구지부 〃 박성도 〃 박문선 금정구지부 〃 박성명 〃 박영철 강서구지부 〃 박상기 〃 박무남 연제구지부 〃 박만순 〃 박계주 중구지부 〃 박래수 朴東昌(동창)고문은 1932년 경북 영 주에서 부친 雲洛(운락) 公과 모친 義 城金氏(의성김씨) 사이의 務安朴氏 31 世로 태어났다. 박 고문의 제14代祖인 武毅公(무의공) 朴毅長(의장) 將軍은 武官출신으로 임란 1등 공신이다.무관 출신인 무의공 박의장 장군은 무과를 통해 출사하고 지방관을 두루 역임하면 서 치적과 업적을 쌓았으며, 임란이 발 발하기 직전 慶州 判官(경주판관)으로 부임했다.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파죽지세로 몰려오는 왜군의 예봉(銳 鋒)을 피해 경주의 속현인 竹長縣(죽장 현)에서 軍兵의 조련과 무기를 제조하 며 전력을 가다듬었다.곧이어 1592년 7 월과 9월에는 영천·경주 일대의 義兵과 박의장을중심으로하는官軍의聯合戰術 은영천과경주성을수복하고전쟁의주도 권을확보하는데貢獻(공헌)했다.전란중 박의장은경상좌도를 중심으로수십 차례 의 크고 작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결과 宰 相(재상)의반열까지올랐다.박의장은武 將으로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7년 동안 慶 州府尹으로 재임하면서 전란으로 피폐해 진 民心을 수습하므로 牧民官(목민관)으 로서도뛰어난역량을발휘하였다.전란이 종결되자 조정에서는 박의장을 宣武原從 功臣(선무원종공신) 1등에 錄勳(녹훈)하 였으며 사후에는 諡號(시호)와 不遷之位 (불천지위)를 내려 그의 功績(공적)을 後 世에영원히기억고자하였다. 박 고문은 무의공 박 장군의 후예답 게 통솔력이 뛰어났으며 추진력 또한 탁월했다. 학창시절 경북 영주 소재 榮州農業高 等學校를 졸업한 후 釜山大學校 法科大 學法律學科를中退하였다. 후 학 양 성 을 위 해 영 주 順 興 소 재 紹 修中學校(소수)에서재직근무하던중軍 入隊로인하여퇴직하였다.전역후(합)영 창실업에입사하면서 태백과의인연을 맺 으며 정착하게 되었다. 이후 태백시 소재 황지합동(주)을 설립하여 임원으로 취임, 이후 1993년 (주)삼풍의 감사에 취임하는 등사회적으로직장과조직에서의 근면하 고 성실함은 박 고문의 Trade-Mark(트레 이드-마크)가되었다. 그리고 많은 사회단체에서 봉사를 실 천해 오면서 보여준 德望과 人品은 각 단체에서 높이 평가를 하였으며, 박 고 문을찾는데일조를하였다. 라이온스클럽의 활동으로서, 태백라 이온스클럽 제11대 회장과 국제라이온 스클럽 309-L지구 제6지역 제1지대 위 원장, 국제라이온스클럽 354-E지구 제 6지역부총재를역임하였다. 가족사로 부인 최영랑(崔嶺娘) 여사 는 초 등 학 교 교 감 으 로 정 년 퇴 임 을 하 였고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으며 슬하 에 朴志煥,雪娥등 1男1女를두고있다 특히, 박 고문은 태백시지부 박씨종친 회의 楚石으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최고 의 수훈자이기도 하며, 태백시 종친회가 전국 의 第一 宗親會로 거 듭날 수 있었 던 것 또 한 그 의 탁 월한 지 도력 이라 아니 할 수 없 으므 로 이 번 기 사 내용 에서 태백 시 지부 박씨종친회의 발전상과 박 고문의 활동상을수록해보고자한다. 박동창 고문은 務安朴氏 寧海派 武毅 公박의장 후손으로 어려서부터 선조에 대한 지극한 爲先情神을 뼈속 가득 안 고 성장했다. 先祖의 본향인 경북 영덕 군 축산면과 창수면 곳곳에 선조의 유 덕과 유훈이 서린 유적지가 즐비하다. 그리고 충절의 가문에서 태어나 국가관 이 뚜렷하고 숭조 및 효 사상, 애종정신 이 남달라 太白에 정착하면서도 지역종 친회참여를갈망해왔다. 태백시 종친회는 凡 朴氏들이 신라왕 손(新羅王孫) 만파일원(萬派一源)이 라는 기치(旗幟) 아래 서로 뿌리를 찾 고 종시(宗是)인 숭조.애 종.육영을 실 천하기 위하여 1974년 8월 20일 여러 종 친들이 삼척읍 황지동 소재 황지극장에 서 종친회 명칭을 ‘종우회(宗友會)’라 하여 창립되어 운영되었다. 그리고 198 4년 박씨종친회로 일신하여 故 박대만 회장이 취임하였고, 1993년 故 박규태 회장 취임과 함께 총무이사직을 맡아 종친회 기록을 정리해 나가면서종친회 체계를가다듬었다. 어느 조직이든 정상적인 체계가 갖추 어지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뒤따 르기 마련이다. 총무이사직 7년의 연속 된 고난속에서 이루어낸 숙원사업인 종 친회관의건립은그어느때보다도더많 은 열정 과 갈망 이 요구 되는 시 기였 다. 태백시 종친회관은 현 소재지인 황지 동 8-45번지의 92㎡(≒27.8평)의 대지를 1985년도에 朴宗和(종화) 현종으로부터 기증 받고 , 이후 1997년부 터 주변 토 지를 매입하여 1997년 건축허가를 얻어 1999 년준공검사를받았는데,건축규모는대 지 246㎡ 위에 연건평 341.24㎡의 철근콘 크리트조슬라브지붕의2층규모이다. 건축승인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국 제구제금융(IMF) 사태가 오면서 집행 부와 추진위원들은 엄청난 고통과 헌신 적인노력이뒤따라야만했다. 당시 총무이사를 맡았던 박 고문은 건축비 조달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기금조성 에 고분군투한 결과 1億3千萬원의 성금 을 조성하고 성금기탁 종원들의 후원에 보답하고자 會館建立記 동판을 제작하 고 명단을 기록하여 회관에 비치하였 다. 그리하여 마침내 회관 건립은 지금 의 태백시 종친회의 초석이 되었고 현 재 젊은 인재를 발굴하고 있는 청년회 의 기틀을 조성하여 향후 태백시지부를 더욱 굳건히 다지기 위한 후손의 양성 에심혈을기울이고있다. 2000년부터2006년까지6년의지부장재 임 기간에는 청년회와 성모회를발족시켰 고, 매년 연 초 원로 어른 과 종친 간 의 세배 행사후장학금전달식및척사대회등을 개최하면서 종원들에게 덕담과 단합에 함께하고 있으며, 연례행사로 오릉참배 및 성모회와 청년회 주관으로 매년 5월 孝道觀光을 실시하고 있다.박 고문은 매 년 맞 이하 는 새해 인 사말 을 통해 “우리 태백시지부의 종친 전 회원이 한마음 한 뜻으로 조상을 숭배하고 종친을 사랑하 는 마음의 의지가 시간이 갈수록 아름답 게 발 전해 가는 모 습에 진 정 가 슴 뿌듯 함 을 느낀다.”라는 신년 메시지는 종친들 의 독려는 물론 회원들의 단합을 이끌어 내 고 함께 발전 하는 데 큰 힘과 많은 도 움 을 주고 있다 . 특히 , 고 령에 도 불 구하 고 회원들의 입회 날짜와 가족 이름을 기억 하고 있을 정도로 종친에 대한 소속감과 책임감은그누구도감히비교할수없을정 도로 특출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고문으로 서타의모범을 실천하고 청년회 성모회 대종회 종원들을 이끄는 선봉장으로서 전국에서 제일가는종친회로부상하기위 한각고의노력은현재에도진행중이다. 박동창 고문의 가장애석해하고 아쉬워 하는부분은강원도본부연혁을정리하지 못함이다.강원도본부는2001년당시양구 에거주하는박영희회장과홍천에거주하 는박성문사무처장체재출범이후2006년 末집행부의불화로유명무실해지면서지 나온 역사도 함께 사라져 연혁을 상고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박 고문은 당시 집행 부를설득하여연혁을정리하려고많은노 력을경주하였으나뜻을이루지못해못내 아쉬움만남는다고말한다. 그리고 2007년 강원도본부는 박영선 회장 체재로 새롭게 출발하였으나, 근 본을 알 수 없는 집행부는 불난만 가중 시켰다. 이어서 2010년에는 박 고문이 중심이 되어 박태룡 신임회장을 추대하 면서 새롭게 출발하여 지금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박 고문은 강원도본부 활 성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원주, 강릉, 동해, 삼척, 홍천 등을 방문하며 각 지 부장을 독려하고 설득하여 동참을 주도 적으로 이끌었다. 현재 江原道本部는 태백시지부에 소재를 두고 朴相琦道本 部長을 중심으로 조직의 발전을 위한 활동을추진하고있다. 박동창 고문은 2022년 새해 들어 이 제 91세가 되었다. 강직한 성품만큼이 나 신체적인 강건함도 뒤따른다. 매사 에 긍정적인 삶은 정평이 나 있다.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부인 최영랑 여사와 늘 함께하는 부부금슬 또한 빛나기에 각종행사에부부는좌중을압도한다. 무안박씨영해파문중과지역종친회등 각급종친회에서의헌신적인봉사로인해 늘 가는 곳마다 윤택해진다. 특히 청년들 과 세대를 초월한 활동은 더욱 빛이 난다. 이에본보는지난2017년창간10주년을기 해 박 고문을 종친회 발전과 본보 발전에 기여한유공자로선정하기도했다. 그 리 고 이 번 취 재 에 한 사 코 손 을 저 으 며 아 무 것 도 한 것 없 는 데 부 끄 럽 기 그지없다. “젊고 더 활동적이며 유능한 종친들을 소개하여 우리 종친회가 더욱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발굴하여달라.”했 으나, 이미 박 고문은 우리 宗親史에 영 원히남을만한업적을남기었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그의 업적을 분 명 뒤따르게 될 것이기에 2007년 창간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켜보았던 박 고문을 소개하면서 자칫 업적에 누가 될까조심스럽기만하다. 항상 그림자처럼 함께 하시는 최영랑 사모님과 더불어 오래도록 건강을 유지 시키며, 우리 곁에 오래도록 남아 지도 해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박상 섭 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종친탐방븣강원도본부고문박동창 절제하는 삶 고결한 성품븣종친회 발 전 열정 쏟아 2014단합대회에젊은사람들을이끌고있는박동창고문(사진○). “여러분사랑합니다!” 91세의 高齡에도 불구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외치는 박동창 고문의 인사 말중마지막에울려퍼지는아름다운짧은외침! 강원도 태백시지부의 정신적 지주이며 산 증인으로 강원도본부 고문이 자본보고문이기도한박고문은매사에빈틈이없으며한세기를살아오 면서종친회에모든열정을바쳐왔고항상절제하는삶속에서품어져나 오는고결(高潔)한성품은많은사람들을따르게하고있어소개해본다. 14대조 무의공 종택. 국가중요민속문화재 제28 6호. 박동창 고문의 생애 헌성한 종친들을 기리기 위해 회관건립기를 동 판에새겨회관벽면에걸어놓고있다. 태백시종친회의지금에이르기까지 매년 개최되는 세배행사에서 종친회원들에게 덕담을건네며종친회발전을모색하고있다. 강원도본부 고문으로 항상젊은청년들과어울리며세대간화합을이룬다. 종친회발전에기여한공로로본보창간10주년행사에서박순구발행인으 로부터공로패를전달받고있다. 태백시지부임원진의축하를받고있다.(시진오른쪽부 터박시원회장, 박 상기도본부장,박동창고문,박종현재무국장,박석용사무국장) 전국종친들의표상(表象)이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