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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때, 세칭 '파리장서사건'에 가담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김희봉은 창녕군 고암면 계팔의 유학자로서 경상도 유림들로부터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독립청원서의 서명을 받아 내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런데 1919년 3월 18일(음력)경 일본 헌병에 발각되면서, 그는 고암면 원촌 출신의 유학자인 조긍섭과 함께 대구 헌병사령부에 연행 구금되어 고초를 겪었다. 그후 그는 3·1운동 1주기를 즈음하여 거족적인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계획하고, 1920년 2월 창녕 장날에 「통곡아팔역 동포 오주열강(慟哭我八域 同胞 五州列强)」이란 선언문을 작성, 낭독하였으나 일본 경찰에 피체되어 다시 고초를 치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