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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10월 심남일 의병진에 가담하여 기군장에 선임되어 약 60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영광·능주 등지를 무대로 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1909년 1월에는 박민홍 의병부대의 제1초십장에 임명되어 총기 15정을 갖추고 부하 30여 명을 인솔하여 나주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어 같은해 4월에는 박사화 부대의 제1초십장에 임명되어 총기 12정으로 무장한 부하 26명을 거느리고 영암 일대에서 역시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하였다. 그러나 같은해 9월 영산포 일제헌병대에 피체되어 1910년 6월 13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소위 폭동 및 살인· 강도죄로 교수형을 언도받았으며 같은해 7월 23일 대구공소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교수형을 당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