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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화선생은 1834년(순조 34)∼1910년. 한말의 의병. 본관은 밀양. 자는 연길(年吉), 호는 의당(毅堂). 함경남도 고원 출신. 경상(景祥)의 8세손이며, 모친은 우씨(禹氏)이다.정통의 위정척사(衛正斥邪)계열 학자로서 서학(西學)의 전파에 대하여 우려하였다.1884년(고종 21)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태백산으로 피하였으며, 1893년 조정에 추천되었으나 사양하였다. 다시 1895년 영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는 등 개혁정치에 반대하였다.또한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 일본의 내정간섭이 심화되자 문경 산중으로 들어가 거의할 것을 의논하던 중 문경병참소에 붙잡혔다. 곧 한성으로 압송되어 8개월간 구금되었다.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되자 남현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청풍에서 교전중 붙잡혔다.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곡기를 끊고 단식하여 23일 만에 ‘예의조선(禮義朝鮮)’이란 글을 쓰고 자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