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뱚2025년 8월 31일 (음 7월 9일) 일요일(신라기원 2082년) 2007년1월24일창간 제224호 12면(월간)뱚 장수문화원이 ‘장수군의 정체성을 찾아서븣’ 일환으 로 계남 흥학당 스토리텔링 및 계승방안에 대한 발표회 를 지난 달 31일 오후 2시 계 남면 행정복지센터 2층 대 회의실에서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충주박씨 참의공,판서공종원들이대 전에서 대거 참석하였으며, 지역의 12성씨 문중에서 참 석성황을이루었다. 원광디지털대학교 웰니 스문화관광학과 겸임교수 이자 웰니스관광콘텐츠개 발연구소대표로있는장원 기 박사(풍수지리학)의 주 도로 제작된 스토리텔링(st orytelling, 이야기하기)백 해의 고장 계남면, 흥학당 1 1가문의 이야기와 입향내 역, 스토리텔링의 의의(意 義)등으로꾸며졌다. 계남면을 예로부터 백해 군(伯海郡)이라불리며바다의우두머리와기운 의 시작이라는 신성한 상징을 가졌다.이처럼 신 성한터에조선초1405년백장선생이장수현위 동에 유배와 만든 청심정은 장수 유학의 기틀이 되었다.이후 안재 박지견 선생이 1504년 계남 화 산에 안락재를 만드니 장수군 최초의 서원이 된 다.그리고 1658년 오·양·박 세 성씨가 내동 고백 이골에 근수루를 만들어 장수군 최초의 향약을 만들었다. 근수루를 만든지 60년 후 계남에 다시 서당을 만든 것이 300여년 유지해 온 계남의 흥학 당이된다.흥학당은계남의11개가문이뜻을모 아 만든 최초의 사림 서원으로 흥학당에 참여한 가문은,충주박씨,연안송씨,남원양씨,보성오씨. 문화류씨,전주최씨,전주박씨,동래정씨,금계한 씨, 안음서문씨, 청주한씨이다. 흥학당에 참가한 11개 가문의 입향조는 조선 초 계유정란과 임진 왜란을피해계남에들어와세거를하게되었다. 먼저 충주박씨는 조선초 강원도 관찰사를 지 낸파은공박수기선생이다.지금으로부터565년 전으로 파은공은 관조 부정공(副正公) 휘 영 (英)의10대손이다.증조의휘는광리(光理)이니 중산대부 민부의랑이고, 할아버지의 휘는 진 ( 풂 )으로사헌부감찰,진해,직산감무를지내고 병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아버지의 이름은 충함 (忠 )으로 주부(注簿),사복사(司僕寺)정(正) 으로 가의대부 호조참판에 증직되었고, 어머니 정부인 김씨는 장령 효공(孝恭)의 따님이다. 선 생은5남3녀중셋째아들이다. 1429년 9월 13일에 호서 덕진현 가장동(현 대 전시 서구 가장동)에서 태어나성종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가의대부 강원관찰사를 지내다가 연 산 혼조(昏朝)를 만나 장수현에 은거하여 말년 의 계획으로 자락정을 짓고 날마다 촌수재(村秀 才)와 더불어 의리를 깊이 연구하고 영리(榮利) 를 멀리하여 서(序), 율(律)과 족부족시 28절을 지으니선생의재종질사암문충공(思庵文忠公, 휘 순)의 기문에 이르기를 븮學文의 알참과 명절 (名節)의 높음과 그리고 문장(文章)덕업(德業) 이 해와 별처럼 밝다븯하였으니 선생의 수양(修 養)을짐작할만하다.하였다. 파은공은 삼판서 가문인 함창김씨와 결혼하 고 아드님은 장수군에서 최초의 서원인 안락재 를 만든 박지견 선생이다. 안락재는 520여 년 전 후학에게 계 학도문을 가르치던 유서깊은 곳으 로 장수 유학의 출발지가 된다.근대에 들어서는 유학자화계박상석선생이배출되었다. 화계 선생은 1894년(고종 갑오) 12월 26일 요 전리에서 용와 박치종 선생의 장자로 태어났으 며,충주박씨고려부정공휘영의23세손이다.19 00년 7세 되던해 탄재(坦齋)박선생에게 천자문 을배웠고,다음해정월에도보로전주탄재선생 을 찾아뵙고 1박 후 귀가하였고,송산의 묵재(默 齋)김 선생에게 수학하면서 조석으로 혼정신성 (昏定晨省,부모를 잘 섬기고 효성을 다함)을 게 을리하지않았다. 1908년 15세에 천천 쌍암리의 백암 노 선생에 게 중용을 배우고 25세에 계남 향약을 조직하였 다.36세에 전주 흠재(欽齋)최 선생에게 나아가 배웠으며,37세에요전경독사숙을설립했다. 1936년 장수향교 전교에 추대되어 대성전, 명 륜당을 중수하였으며, 동서재와 사마재 문루를 중건하고 담장을 증축하고 충복비각, 논개비각 중건등많은업적을남겨향교가국보로지정되 는발판을만들었다. 1962년 68세에 화산사를 창건하였고, 군내의 여러 서원을 복설하고 청양 모덕사(慕德祠) 장 의에 추대되었다. 1974년 81세까지 교육을 통하 여민족의식을고취하고예속(禮俗)을돈독하게 지키며 성현의 도(道)를 이어 후학을 양성하는 데 평생 정력을 쏟고 그해 10월 22일 돌아가시니 문인들이화계집 7권을펴내고존양계를 조직하 여매년3월20일선생의학덕을기리고있다. 전주박씨 입향조는 박삼윤 선생으로 중종조 생원으로 기묘사화때 전주에서 내동 궁평에 들 어와 살기 시작했다.입향이후 지역 학풍 진작에 많은 기여를 했다.그의 아들 석령(碩齡)의 호는 계동(溪東)으로명종조에생원으로효행이뛰어 났다. 손자 언상(彦祥)은 통정대부, 증손 호( 紫 ) 는 선무랑으로 사옹시주부이고 5대손 희채(喜 采)의호는명와(明窩),행실이돈독하고학행이 뛰어났으며 화양리에 지역의 유지들과 함께 후 학들의교육의장이된흥학당건립에아들필승 (必昇), 필성(必晟), 필화(必華), 필순(必淳)과 손자 세한(世漢),양한(良漢),삼종형제양채(亮 采),응채(應采)와그들의손자종한(宗漢),조한 (祚漢),양한(良漢)등 13명이 동참하는 등 남다 른 향학(向學)을 보여주어 당시 장수지역의 명 현들과 함께하며 남긴 많은 기록과 유물이 산재 해있다. 농은 박계대(農隱 朴啓大) 의 아들 기복(基 福)은 학문과 도학이 뛰어났으며, 원릉참봉(영 조와 정순왕후의 능)참봉이고 아들 동현(東鉉) 은 지방행정 서기 및 의원으로 타고난 숭조심과 종친간이 돈목을 이끌었으며, 지역 유림들의 칭 송을받았다. 계남면 화음리 입구 도로변에 있는 벽남정(碧 南亭)은지역의선비(박기복븡오일승등)20인이 매년 춘추에 모여 교류하던 장소로 주로 지기상 부(志氣相符)하여 애경상문(哀慶相問, 애경사 에서로찾아보는것은우리사회의아름답고좋 은 풍속)하던 곳이다.이밖에도 방수대,장안정, 선유정등강학을목적으로세운건물이있어후 진양성에심혈을기울인것을엿볼수있다. 한편 장수 계남의 흥학당은 장수유학의 중심 이 되었고, 장수 향약의 근간을 이루어 왔다. 그 리고 그중심에있는 장수입향조 11가문의선현 들의 숭고한 정신을 현세대 우리는 기억해야 한 다고마무리했으며,원파박수섭선생은‘흥학당 의위상과계승방안모색’을주제로흥학당이지 역 학생들과 전국 유수의 대학생들이 글공부하 는장소로활용해야한다고주장했다. 한편 장수문화원 한병태 원장은 관내 청소년 들이흥학당에서인성함양과예절,그리고글읽 는 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교육지원청과 협의하 여추진할것이라고밝혔다. ▶관련기사9면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전북장수군계남흥학당스토리텔링·계 승방안발표회 장수문화원,충주·전주박씨등12개성씨 박수섭 발표자 (충주박씨대표) 한병태문화원장 장원기박사 밀양시(시장 안병구)는 하반기 단체관광객 유치 인 센티브지원사업일환으로밀성재를찾은후손및관광 객에게최고27,000원의인센티브를준다. 이에 지난 19일 본보 상섭 국장과 밀성재 돌희 총무 는 밀양시 정영선 문화예술과장과 관광진흥과 관광기 획담당김미선주문관을찾아세부사항을전달받고상 호협력키로했다. 지원조건은10명이상단체관광객으로당일관내1식, 관광지 2개소(유료1개소) 이상 방문 시 1인당 1만2천 원,숙박을 할 경우 관내 1박2식,3개소(유료 2개소)이 상 방문 또는 관내 1박 3식, 관광지 2개소(유료1개소) 이상방문 시 1인 1일 1만2천원, 지원조건 충족후 밀양 시 주요 관광지 추가 방문 시 1인 3천원(전체 일정중 1 회에한하여지원)등(당일)1인최대1만5천원,(1박) 1인최대2만7천원까지지원하게된다. 인센티브 지원을 받으려면 소정의 양식 ‘단체관광 계획서’, ‘단체관광 일정표’, ‘단체관광 참여자 명단’, ‘관광지 방문 증빙 사진’, ‘식대 및 영수증’을 제출해야 하는데‘단체관광계획서’등은최소1주일전에신청해 야하고양식은본보에비치되어있다. 밀성재 춘추 향제에 많은 후손 분들이 전일 밀양에 도착하여숙박을하고돌아가는데이를활용하면많은 도움이될것으로기대된다. 이에밀성재와본보에서는이를적극홍보하여밀성 재를찾은분들에게인센티브를받을수있도록지원할 방침이다. 밀양시‘밀성재방문객인센티브지원’ 10명이상관내관광지2곳·식사1식1인12,000원에서최고27,000원 1974년 8월15일 국립극장 광복절 행사장 에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중 조총련계 문 세광이쏜총에맞아육영수여사가숨지는 큰사건이일어난지51년이되는날이다. 국립현충원과 생가가 있는 충북 옥천 등 에서 봉행된 추모제에는 전국에서 ‘국민을 어루만진 영원한 국모의 정신을 계승하겠 다며 추모의 물결이 이어진 가운데 고령박 씨대종회에서는 박선호 회장을 비롯한 임 원진이 국립현충원을 찾아 참석 헌화 분향 하며고인의넋을기렸다. 박선호 회장은 참배후 육영수 여사님은 대한민국의영원한국모로그품안에국민 의 꿈과 희망이 자라났다며 고인을 회상했 다. 생가가 있는 옥천에서는 옥천군 애향회 가 주관한 가운데 황규철 군수를 비롯 군의회 의원 등 많은군민들이식장을찾았다. 육영수 여사는 육종관(陸鍾寬)과 이경령(李慶齡) 사이의차녀로충북옥천에서태어났다.옥천죽향국민 학교를마치고상경하여배화여고를졸업한뒤옥천여 자중학교교사로근무하였다. 1950년전란으로부산에피란중일때육군중령박정 희와 혼인하였고, 1963년 10·15총선거에서 5대 대통령 에당선되고연임됨에따라대통령영부인으로11년간 내조하였다. 만년에 맡은 공직은 양지회(陽地會) 명예회장과 자 연보존협회총재였으나,평소재야여론을수렴하여대 통령에게 건의하기를 계속하는 가운데 ‘청와대 안의 야당’이라는말을들었다. 남산에어린이회관을설립하였으며,서울구의동일 대에 어린이대공원을 조성하고 정수기술직업훈련원 (正修技術職業訓練院) 설립을 비롯하여 재해대책기 금조성과 정신박약아돕기운동 등 그늘진 곳을 찾아다 니며사회복지사업에바쁜일과를보내었다. 어린이 잡지 븮어깨동무븯 창간과 서울대학교 기숙사 정영사(正英舍)를 건립하였다. 경향 각처의 여성회관 건립은물론연말마다고아원·양로원을위문하여따뜻 한 구호의 손길을 미쳤고, 전국 77개 소의 음성나환자 촌을 순방하면서 온정을 베풀어 국모(國母)로 추앙받 았다. 그러나충청북도옥천군옥천읍향수길119생가는1 974년 육 여사 서거 이후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생가는 폐가의길을걷는다. 육여사 서거 후 네 해째.1979년 10.26사건으로 박 전 대통령이서거한이후 방치되어오다가1999년 유족들 이건물을완전철거하면서생가는기단과초석과함께 터만남게된다.이후옥천군에서2000년9월,육영수여 사 생가 복원계획을 세우고,민간이 주체가 된 븮육영수 여사생가복원추진위원회븯를발족하여육여사의회고 에근거하여2002년생가지지표조사를마친다음2003 년부터 2010년까지 37억 5천만 원을 들여 건물 13동을 복원후전국에서고인을기억하는많은사람들이찾고 있다. 고육영수여사제51주기추모제열려 국립현충원·옥천관성회관등븣뷺영원한국모(國母)의정신계승하겠다뷻 고령박씨대종회임원진이 국립현충원을찾아고인의넋을기린가운데박 선호회장이 분향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