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뱚2020년 8월 31일 (음 7월 13일) 월요일(신라기원 2077년) 2007년1월24일창간 제164호 12면(월간)뱚 선원세계를찾습니다 선조계통을찾지못하여전국의현종님들에게아뢰오니 아래의내용을아시는분이있으시면연락주시면감사하겠습니다 . 뱚뱚뱚△본관:경주(慶州) 뱚뱚뱚△거소(居所):경주부내남면신기리 뱚뱚뱚뱚휘(諱)박만억(朴萬億)-1850년~1990경추정 뱚뱚뱚뱚父 득순(得淳) 뱚뱚뱚뱚祖父은호(殷好·殷浩)절충장군용양위부호군 뱚뱚뱚뱚曾祖현도(朴玄道)병절교위용양위부사과 뱚뱚뱚뱚子 주신(周信) 연락처 박종채 010-8573-1410뱚 박영경 010-2109-5086뱚 한빛신문010-3268-7300뱚 호남학문의 최고 본고장 장성의 명현 (名賢)인 돈재 박연생, 교리 김개, 돈암 박자온, 아곡 박수량, 백우당 박상의, 눌헌 박상지 선생을 배향하고 선현의 유 덕을 기리고 학문을 탐구해온 수산사 임 원진 개편과 함께 지난 달 24일 오후6시 전남장성읍‘대성회관에서있었다. 이날 행사는 당초 수산사 강당에서 지 역유림과 본손들을 초청하여 개최하려 하였으니 ‘코로나19’의 확산이 계속되 면서 소수인원만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 게 진행된 가운데 박래호 이사장은 “수 산사 일을 보아온 지 언 10년 세월이 흘 렀다. 정말 빠르게 지나간 시간 속에 나 름대로 오늘까지 온 것은 일가 여러분들 의 적극적인 협조 때문이었고, 오랜 세 월이 흐르다 보니 새로운 인재가 나와 일을 해주어야 새로운 창작과 함께 더 발전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이임사를 마무리하면서 신임 집행부는 유능하고 참신한 분들로 기대가 촉망된 다며격려를아끼지않았다. 박길섭 신임 이사장은 선대 어른의 명 이라 생각하고 수락했다고 말하고 무슨 일이든 합법적으로 할 것이며 모르는 것 이 많아 옆에서 도와 줄 것이라 믿고 차 근차근 해볼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보였 다. 이어 함께할 태열 총무이사와 경열 재무이사를 소개한 가운데 태열 총무이 사는 모든 것이 부족한 사람에게 총무를 맡겨 걱정이 앞선다며 후원과 협조를 당 부하였고, 경렬 재무이사는 종사경험이 없는 제가 큰 중책을 맡아 어깨가 무거 움을 느끼지만 이사장님을 잘 보좌해서 잘 해 볼 것 이 라 고 말 하 면 서 좌 중 의 큰 박수속에신임집행부출범을알렸다. 신임박이사장은수산사초대본손대 표인원재박래열도유사의아들이다.강 한 추진력과 성실함으로 요식업계에서 자수성가한 인물로 회자된 인물로 회자 되고 있어 수산사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보인다. 수산사는 2013년 3월 강당 숭의당(崇 義堂)을 헐고 새롭게 착공한 이후 조경 사업, 사당 앞(마당) 포장, 묘정비 이전 과 2016년 3월 외삼문 신축, 지난해 5월 말 마지막 남은 담장축조사업 착공으로 1개월여 공사기간을 거쳐 완공되어 면 모를 일신했다. 이 과정에서 군비와 도 비 2억 여원을 유치했고, 본손들의 성금 이 1억7백67만2천원 답지하는 등 모두 가 하나가 되어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문화재 지정을 받지않은 시설에 군비와 도비를 유치한 것은 전무한 일이다. 배 향 선현이 지역에 끼치는 큰 영향을 떠 나 집행부의 노력이 돋보인 부분이다. 특 히 개 인 및 단 체 8 9 곳 이 참 여 한 것 또 한대단하다. ▶헌성록명부참조 한편 이날회의에는 장성향교 이충원 사무국장이함께했으며,회의말미에신 임 집행부에 힘을 실어주고 안정적인 운 영을 위해 제관을 초청하고 망첩을 보내 는 일은 전임 박래호 이사장, 제물을 준 비하고 유림 통문은 박춘곤 전임 총무이 사가 향후 2년 정도 뒷받침키로 해 수산 사발전에크게기여할것으로보인다. 수산사는 지역의 여러 선비들이 단종 절신 돈재 박연생 선생과 교리 김개 선 생의 학덕과 절의를 추모하기 위해 1833 (순조33)년 황룡면 수산리에 창건하여 춘·추로 향사하다 1868년(고종5) 대원 군의서원철폐령으로훼철되었다. 1977년 지금의 신호리 신촌의 밀성박 씨 도평의사공 후 돈재공 종중의 제당 (祭堂) 뒤로 옮겨 사우(祠宇)를 복설 (復設)하고 아곡 박수량, 백우당 박상 의,눌헌 박상지 선생을 추배(追配)하여 향사를 모셨다. 복설하면서 기존(旣存) 강당은 숭의당(崇義堂)이라 명명하고 전면에 경앙문(景仰門)을 세워 外三門 을 삼았으며, 강당 동편에 지경재(持敬 齋)라 이름한 동재격인 집과 변소를 지 었으며,수산사(水山祀)라 이름 한 사당 (祠堂)과 강당 사이에는 신문(神門)을 세우고,1986년 돈재 선생의 족제(族弟) 이자 살아온 길이 같은 돈암 박자온 선 생을추배하여지금에이르러,수산사의 현재를 알아보기위해 중건기문과 헌성 록을함께소개해본다. ▶관련기사5면 /박상섭 편집국장(parkss1012@hanmail. net) (사)수산사보존회임원회의및이사장이·취 임식 성역화사업마무리속에임기마쳐븣초대회장아들길섭현종뒤이어 전남 장성의 수산사보존회 임원회의가 지난 달 24일 개최된 가운데 박래호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 고있다.이날 회의는이사장이취임를함께 가졌다. 신임 임원진, 오른쪽부터 박길섭 이사장, 박태 열총무이사,박경열재무이사순. 초당 순일 현종이 장마와폭염속에서노 구(老軀)에도 불구하 고 휘호를 쓰고 족자 를 만 들 어 본 보 에 보 내왔다. 숭조애족육 영, 동근백지만엽(崇 祖愛族育英,同根百枝 萬葉)의 휘호는 븮위대 하고 높으신 조상님을 정성껏 받들어 모 시고, 천파만파로 갈라진 파조 시봉하면 서 동족간에 서로 사랑하며 오백만 성손 들 영웅으로 만들어 신라의 기백 빛내리 라, 우리 모두 한 할아버지 핏줄로 태어나 천파만파로 갈라져 각 자기 파조시봉 잘 하며,동족간에 돈독화목하면서 행복하게 잘살지니라븯라는설명문을달았다. 이는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각종 제 례행사 및 종친회 모임이 취소되는 상황 에 자 칫 숭 조 심 마 저 잃 어 버 리 는 건 아 닌 지 경각심을 심어주고 위선 사업에 매진 해줄것을당부하는메시지이다. 순일 현종은 해박한 보학으로 청소년 들을 선도하고 있고, 수시로 본보에 전화 하여 조언을 아끼지 않는 등 어른으로서 의 역할을 다하고 있으며, 조선말 유학자 호산 박문호 선생 현창사업에도 앞장서 고 있 다 . 영해박 씨 순일 현종 휘호 보내와 ‘코로나19’경계하며숭조심잃지않길기원 박순일현종 ‘ 금 궁 스 포 츠 를 통해 무장투쟁 독 립운동가의 호연 지기를 배운다.’ 독립운동가 박희 광 선생의 용맹과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열 린 ‘제1회 독립운 동가 박희광선생 배 금궁스포츠대회’ 대회가 광복 제75 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8월 15일 구미시 금오지 박희광선생 동상 일원에서 열렸 다. 한국유통신문 주최 세계금궁스포츠 협회 주관으로 열린 이번 금궁스포츠대 회는 구미시 봉곡 출생의 독립운동가 박 희광선생의 용맹했던 친일파 처단과 독 립운동활동으로 일제에 피체되어 뤼순 감옥에서 장기 복역수로 19여년이라는 오랜 시간 고난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굳 건히 이겨낸 불굴의 정신을 되새기고 이 를 통 해 애 국 심 과 호 연 지 기 를 함 양 하 는 데역사적인의의가있다. 이날 박희광선생 선양 행사를 위해 세 계금궁스포츠 의성군협회 강태희 안평 지부장과회원,신광진 전의성군농민회 회장과 권경원 구미마라톤클럽 회장 및 회원,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부 이수연 지부장 및 회원, 지역 주민과 청소년,어 르신등다양한계층에서참가하였으며, 김재상 구미시의장을 비롯해 구자근 국 회의원, 윤창욱 경북도의원, 김상조 도 의원, 신문식 시의원, 장세구 시의원 등 정치인들도 대회에 참가해 기량을 뽐냈 다. 박정용 박희광 선생 기념업회 사무처 장은 기념사를 통해 박희광선생의 공적 을 알리며 금궁스포츠를통해 박희광 선 생선양이활발히전개되기를기원했다. 한편 이날 대회 수상자는 1위 강태희 (의성군), 2위 전옥선(구미시), 3위 오 보배(형곡동) 선수가 각각 수상의 영예 를안았다. 박희광 선생1901년 2월 15일 밀성대 군 후 복야공의 8世孫으로 한성부판윤 을 지 낸 휘 천 귀 의 차 자 인 이 요 당 휘 흥 거(興居)의 후손으로 경주부윤에 오른 휘수홍의11세손으로태어났다. 18세 되던 해인 1919년 선생은 만주에 서 결성한 임시정부 무장독립운동단체 인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자진 입 대하여,특공대원으로써활약하게된다. 암살과 테러에 필요한 승마와 수영, 사격, 폭탄제조법, 독침, 변장술 등의 교 육을 받고, 신분을 숨긴 채 대한통의부 의암살전문요원으로활동하였다. 1924년 박희광은 임시정부로 부터 만 철연선(萬鐵沿線)의 친일파를 토벌 하 라는 특명을 받고, 김광추(金光秋), 김 병현(金炳賢)등과 3인조 암살 특공대를 결성하여이들의숙청작업을하였다. 1924년 6월1일에는 윤영기 동지의 안 내로 무순방면의 고등계 첩자이며 여순 조선인회(旅順朝鮮人會)서기인 악질 친일파 정갑주(鄭甲周)와 가족을 현장 에서 사살하고 뷺정갑주, 조국을 배신한 첩자! 우리는 조선독립을 위해 싸우는 투사다.너를조국의이름으로처단하겠 다뷻 라는 선고문을 남겼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다음날 여순(뤼순:旅順)시내는 발 칵뒤집히게된다. 그리고 삼엄한 경비를 빠져나와 1924 년6월7일 대낮에는 보민회(保民會)를 습격하여 이용구(李容九)와 더불어 열 성 일진회(一進會)원이자 일제 강점기 의 직업적 친일 인물로 국권침탈에 앞장 섰던 친일파 거두 최정규(일본식 이름: 山本正夫,1888년 음력 8월 25일~1940년 양력 8월 21일,일제 강점기의 직업적 친 일 인물로 만주 지역에서 밀정 단체를 운영했으며, 다른 이름으로 최창규(崔 昌圭)가 있다)를 암살하려 하였으나 최 정 규 가 미 리 피 신 하 여 그 의 부 하 허 윤 과가족을사살하였다. 박희광과 이들 3인조 암살단은 1919 년부터 1924년 체포 시점까지 일본 고관 과 친일파암살,일본총영사관을비롯한 일제기관 기습활동으로 일본 군경에 이 미수배중이던상황이었다. 박희광은 1924년 대련지방법원에서 1 심에 사형을 받았으나, 1927년 뤼순(旅 順)고등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형이 확 정되어 여순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일본천황(裕仁) 즉위 때와 황태자 출생 때에 감형되어,20년( 1924년7월~1943년 3월)을 복역한 후 1943년 43세의 나이로 출옥 백범 김구선생의 경호책임자로 활 동하였으나 김구 선생이 암살당하자 분 개함을 이기지 못하고 조용히 시골에 은 거하며사회사업에몰두하였다. 1968년3월1일 삼일절 행사 때 대한민 국 건국훈장 국민장(현 독립장)을 수여 받았다.그로부터 2년 후인 1970년1월22 일 71세의 일기로 서울 보훈병원에서 타 계하였으며 그의 묘소는 서울 동작동 국 립 현충원 애국자묘원에 문화 류씨(류 문기)부인과함께안장되었다. 한편 대구 달서문화재단에서는 오는 9월 25일~26일 양일에 걸쳐 웃는얼굴아 트센터에서 박희광 선생을 주재로한 ‘항거의 불꽃으로 살다간 영웅’의 창작 오페라공연을갖는다. 【註 금궁】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금궁’은 좁은 실내 공간에서 충분한 운동량을 제공하는 고급 레저스포츠로서, 손목, 어깨, 팔, 허리, 다 리 등 전신운동이 가능하다. 더불어 과녁을 명 중시키는데서 오는 성취감과 즐거움은 현대인 의 쌓인 스트레스를 일시에 해소시켜 줘 정신건 강에특히이롭다할수있다.금궁스포츠는인간 이 고대부터사용해오던투척본능에입각해개 발한 신개념 스포츠로 일정한 거리에서 자석금 궁핀을 던져 과 녁판을 명중시키는 안 전한 실내 스포츠다. 금궁스포츠는 우리 고유의 투호놀이 를비롯해서양의다트와국궁기본자세및야구 의 피칭 동작 등을 융합 하 여 게임 을 통한 집중 력, 근력향상, 유연성, 민첩성을 기를 수 있도록 고안됐다. 다트와 한궁을 아우르는 신개념 레포 츠로 대한민국 경북 구미에서 탄생한 것이 바 로 ‘금궁(金弓)’이다. 금궁은 3m, 4m, 5m 투척 거리 규칙 적용과 더불어, 시간제한이 걸린 속 투게임 및눈가림투척등흥미진진한 게임방식 을 채택했다. 특히 금궁의 4m 이상 투척은 신체 요소 중 어깨, 팔, 손목, 허리, 다리 등을 단련시 키며 운동량이 부족한 현대인들에게 실내운동 으로 탁월한 효과를보일것으로 예상된다. 제1회독립운동가박희광선생배 금궁스포츠대회열려 시민의관심을불러일으키는새로운방식의독립운동가선양행사시작 창작오페라‘불꽃으로살다간영웅’9.25~26대구웃는아트센터청룡홀 박정용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