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뱚2020년 5월 31일 (음 윤4월9일) 일요일(신라기원 2077년) 2007년1월24일창간 제161호 12면(월간)뱚 한 빛 신 문 창 간 十 三 주 년 을 축 하 드 립 니 다 븥 五 백 만 성 손 의 영 원 한 길 잡 이 가 되 어 주 길 기 대 합 니 다 븥 江 陵 朴 氏 大 宗 會 顧 問 朴 泰 東 朴 性 澈 朴 燦 均 朴 容 俊 朴 在 東 朴 來 均 會 長 朴 穉 奎 副 會 長 朴 相 權 朴 容 昇 朴 殷 均 朴 春 均 朴 祿 均 朴 周 涉 監 査 朴 鍾 吉 朴 容 栢 事 務 局 長 朴 滿 均 朴 氏 宗 親 會 江 陵 地 域 奬 學 會 會 長 朴 容 聖 太 白 建 設 뷛 株 뷝 江 陵 市 龍 池 路 一 三 七 숭덕전·릉 참봉 이·도임식이 지난 23 일 경주 숭덕전 예빈관 앞마당에서 지역 기관단체장과 이도임 참봉가족 등이 지 켜본가운데있었다. 이날 이도임은 숭덕전, 유리왕릉, 지 마왕릉, 신덕왕릉 참봉으로 이른 새벽 숭덕전 고유봉심과 10왕릉 봉심으로 시 작되었으며, 이임하는 참봉은 박병화 (숭덕전), 박윤동(유리왕릉), 박구용 (지마왕릉), 박원태(신덕왕릉) 참봉이 고, 도임은 박효길(숭덕전), 박병환(유 리왕릉), 박손잠(지마왕릉), 박대락(신 덕왕릉)참봉으로임기는2년이다. 오전 11시 진행된 이도임식에서 박수 복 시조왕릉 참봉은 환영사를 통해 모든 문중이 참여하는 숭덕전이 되었으면 하 는 바램입니다. 아직도 참여하지 않고 있는 문중의 후손들도 멀지 않아 참봉으 로 참 여 하 게 될 것 을 기 대 해 본 다 고 하 였으며,오릉보존회박낙규총재는이임 하는 참봉님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도임 하는 참봉님들은 다양한사회 경력과 모 범적인 봉사활동으로 숭봉정신이 투철 한 분들로 알고 있다고 말하고 지난날의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성찰의 계기로 삼아 새롭고 창조적인 박씨대종친회로 거듭날 수 있는 기틀을 다지는데 다함께 노력해야할것이라고말했다. 이임하는 박병화 전참봉은 나의 남은 생애 중 전참봉직 선택으로 시조왕 선조 님의 영혼을 모실 수 있는 기회를 가졌 던 것은 “보람찬 값진 선택” 이었다고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과거에 얽매이면 앞으로의발전이늦어진다.”고말했다. 도임하는 박효길 전참봉은 138대 참 봉을 역임하신 휘 돈수 참봉님이 친조부 이고, 숭덕전의 여러 참봉님 업적에 누 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몸가짐에 조심하 면서 열과 성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며 도임포부를 밝히고 숭덕전제례가 무형 문화재가 되고 시조왕동상이 세워지면 숭덕전의 위상도 새로워질 것이라며 임 기동안 현임 참봉님들과 함께 다시 한 번 수호봉심에 최선을 다 다할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숭덕전은 1429년(세종1 1)에 오릉 옆에 묘전(廟殿)을 창건하고 양민으로 수호케 하고, 춘추중월(春秋 仲月-2월, 8월)에 향축(香祝)과 폐백 (幣帛)을 내려 보내어 제향(祭享)을 올 렸다. 이후 1723년(경종 3)에 숭덕전(崇 德殿)으로 현액(懸額)하였고 景廟 癸卯 7월 22일 사액(賜額)하고 본손으로 전 참봉(殿參奉)을 시치(始置)하여 초대 박천근 전참봉이 도임한 이래 이날 도임 하는박효길참봉이224대참봉이된다. 시조왕릉 참봉의 역사는 1926년 초대 박영진참봉이도임하였고,1979년 남해 왕 이하 9왕릉에 참봉제가 실시되어 10 왕릉을동일체제로봉호케하였다. 한편 이날 이·도임식에는 제25~26대 성모사 봉찬회 회장단도 함께 가졌다. 이임하는 회장단은 신선이 회장, 박복 순, 김분식 부회장이며, 도임하는 회장 단은 김분식 회 장,박서영븡박은 희 부회장으로 김분식 회장은 투철한 숭조심 으로 청도에서 매 행사마다 앞 장서는 등 타의 모범이 되고 있 어 많 은 분 들 의 칭송이자자하다. □도임참봉프로필 △제224대 숭덕전 참봉 ▶박효길(1940.10.14.生) ▶경주시 재향군인 회 회장 ▶경주포항 울 릉 건강의료보험공단 지사장 ▶신라오릉보존 회 경주직할본부 회장 ▶밀직부원군후청풍당 공파 대종회장(현) ▶이 명박대통령표창수상 △제24대유리왕릉참봉 ▶박병환(1953.01.1 3. 生) ▶한진기업 상무 이사 ▶경북매일신문 이사 ▶재포항 영덕군 향우회장▶무안박씨영 해파종친회장▶포항시 장 표창 수상 △제28대지마왕릉참봉 ▶박손잠(1948.03.0 7. 生) ▶청도국악협회 부지회장 ▶청도예총 부지회장 ▶전통예술경 연대회 민요부문 금상 수상▶대한민국청소년 대상건축대상수상 △제22대신덕왕릉참봉 ▶박대락(1959.10.10. 生)▶경기대학교 정치전 문대학 졸업 ▶바르게살 기운동 영덕군협의회장 ▶여의도연구원 정책자 문 위원(현) ▶사회복지 법인 영원노인복지센터 대표이사(현)▶무안박씨대종회사무총장(현) 숭덕전·릉참봉,성모사봉찬회장단이도 임식 숭덕전,유리왕릉,지마왕릉,신덕왕릉,성모사봉찬회 김분식(제25대봉찬회장 ) 도심 속에 자리하면서 서원의 본래기능인 강학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광주광역시 서구 소재 벽진서원의 춘향이 지 역 유림주관으로 지난 16일 오전 10시 제물봉진을 시작으로 1 1시30분분포례를끝으로엄숙봉행되었다. 특히 이날 제향은 유안중(柳晏重) 집례관의 차분한 진행으 로 정상윤(鄭尙允)前광주향교전교의전폐례에이은초헌례 에 이낙구(李洛龜) 축관의 독축은 낭랑히 울려 퍼져 회재 선 생 의 충 의 와 애 민 정 신 이 세 속 의 혼 탁 함 을 정 화 하 는 듯 한 가 운데 이문범(李文範) 아헌관, 유을열(劉乙烈) 종헌관의 헌작 으로이어졌다.특히이날행사전에는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 주관 문화탐방객들이 서원을 찾아 선생의 얼을 이으려는 추 모의물결이더욱넘실되었다. 벽진서원은 1602년 회재 박광옥 선생의 학덕과 절의정신을 추모한 후학들이 광주 서구 벽진동에 벽진서원을 창건하여 향사(享祀)와교학(敎學)에힘써왔다. 1681년 충장공 김덕령 장군을 추배하고 의열사(義烈祠)로 사액되었으며, 뒤에 오두인(吳斗寅) 김덕홍(金德弘) 김덕보 (金德普)를 배향 해오다 1868년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그러므로 후손들이 1927년에 운리영당(雲裏影堂)을 창건 해 향사하였는데 도시개발로 선생의 묘소와 영당이 편입되 어, 1999년에 묘소를 이장하고 그 옆인 서구 풍암동 769-1번 지에 운리사(雲裏祠)를 종중에서 복설하고 뜻있는 유림들과 학자들 그리고 종중이 ‘벽진서원위패봉안추진위원회’를 구성 하여 이 곳을 벽진서원이라 하고 유림봉사(儒林奉祀)를 결정 하면서 선생의 위패를 모신 운리사를 의열사로, 학문을 강학 하는 강당의 중앙에 벽진서원, 동쪽에 모현당(慕賢堂), 서쪽 에 숭본당(崇本堂)이라편액하고2018년 6월 7일 지역 유림들 에의해복원되었다. 복원후 지역 주민과 학생들을 위한 강학프로그램을 선보이 면서 많은 호응을 받았으며, 상시 개방으로 주민들의 문화공 간으로 자리메김하고 있어 서원 본래을 기능을 다하고 있다 는평이뒤따른다. 이날 제향에서도 초헌관으로 헌작한 정상윤(鄭尙允) 前광 주향교 전교는 분포례 후 가진 인사말에서 사우가 완벽하게 복원되어 지역사회에서 크게 빛나고 있다는 소식에 관계자들 의 노고를 가늠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벽진서원이 지역 유림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으며, 이에 음 성박씨 정승공파 상배 회장은 벽진서원이 지역사회를 위해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문중에서는 적극 협력할 것이고 화답 했다. 회재 박광옥 선생은 1526년 1월 26일 광주광역시 서구 매월 동 회산에서 성균관 사예인 곤(鯤)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본 관은음성(陰城)이고자는경원(景瑗)이며회재는호이다. 10세 때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인 정황(丁 ) 선생을 찾아 학문을 연마하여 21세에 소과에 합격하고, 향약 (鄕約)을 만들어 향리의 예속을 교화시켰 다. 선생의 덕망이 높아지자 44세에 학행(學行)으로 내시교관을 지내고 49세에 운봉현감에 제수되었으며 별시(別試)에 합격해 예조정랑 사 헌부지평과 성절사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영광군수 밀양부사 등을 역임한 후 향리에 돌아와 개산송당(蓋山松堂) 을 짓고 후진양성에 매진했다. 1592년 선생이 67세 때 임진왜 란을 당해 전국이 왜적에게 유린되어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 화 같았다. 선생은 인근에 살던 고경명(高敬命) 나주의 김천 일(金千鎰)과 의병을 일으켜 나라와 민족을 구출하자고 다짐 하고 의병을 모집해 김천일과 고경명에게 출전하게 하여 큰 성과를 올리게 하고 뒤에서 의병과 군량을 확보하여 그 뒷바 라지를 도맡았다. 광주목사 권율(權慄)이 천 여 명의 광주군 사로 이치대첩을 거두고, 이어서 전라순찰사가 되어 만 여 명 의 호남의병을 이끌고 북진할 때 군사와 군량을 공급했으며, 대흥사의 승장 처영(處英)을 함께 참여시켜 행주대첩을 이룩 하는데 큰 공헌을 하게 한 것도 선생의 역할이었다.선생은 67 세의 고령에도 나주목사에 취임하여 국난을 극복하는데 전념 하다가 병환으로 사임하고 1593년 10월 26일에 별세했다. 광주서구청에서는서민들의근심을덜어주는등남다른애 민정신을 보여 온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개산방죽(전평제)에 유허비를 세우고 광주 남구 칠석동에서 시작하여 서부 농수 산물도매시장과 풍암저수지, 원광대한방병원을 지나 남구 백 운동 동아병원 앞에서 대남로와 연결되는 13㎞를 ‘회재로’로 명명하였다. 그리고 선생의 유집목판(遺集木版) 광주광역시 유형문화 재제23호로지정되어서원에소장되었다. 벽진서원춘향봉행 낭랑한독축소리,혼탁한사회를정화하는듯도심속으로울려퍼져 회재박광옥 선생의학덕과 충의·애민정신을본받기위한 추모제향이 지 난 16일벽진서원의열사에서봉행된가운데제관들이 함께하고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주관 문화탐방행사탐방단이 벽진서원을방문상 배종친회장이 의열사와회재선생에대해안내를하고있다. 제물 봉진례에서제수를 점검한 정상윤 초헌관 이 수결을하고있다. 제례후제관들에게제수 를 나누어 주는 분포례 를 하 고 있다. 지난 4븡15 총선 에서 6선에 성공 한 박병석 국회의 원이 21대 국회 최 다선으로 더불어 민주당이 여당 몫 국회의장 경선에 단독 입후보하면 서 의장 추대가 사실상 확정되었다. 경 쟁 상대인 김진표 의원이 뷺경제 위기 극 복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비에 전념하 겠다뷻며 당내 경선에 불출마했기 때문 으로, 오는 25일 민주당이 박병석 의원 의 추대를 마치면, 내달 초 본회의 표결 을거쳐임기를시작한다. 박 의원은 고양대군 후손으로 족보문 집 업체인 대전의 회상사를 설립한 故 홍구(1922년-2002년 2월 8일) 公의 둘 째아들로 1952년 태어났다. 1975년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로 홍콩 특파원, 정치부차장, 경제부, 산업부 부 장, 부국장 등을 역임하고 1999년 서울 시 정무부시장으로 관계에 입문했다.이 후 새정치국민회의 수석대변인을 맡았 으며, 2000년 5월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에 대전 서구 갑으로 출마 당선된 이후 지난 4월 한 지역구에서 내리 6선을 해 지역에서 신망이 아주 두텁기로 유명하 다. 2012년 제19대 국회 전반기 부의장 을 지냈으며, 그동안 의장 후보로 수차 례 거론되기도 했다. 차분한 성격으로 여야 의원간 관계가 원만하다. 다선 의 원들일수록 구설수에 한번쯤은 휘말리 기 마련이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휘말 리지 않는 등 평소 사생활 관리와 언행 을신중하게한다는평이다. 21대 전 반기 국 회 의 장 박병석 현 종 추 대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