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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법린의 민족의식 형성과 실천 -1927년 브뤼셀 연설을 중심으로- 조 준 희* Ⅰ . 머리말 Ⅱ. 김법린의 민족의식 형성 Ⅲ. 김법린의 민족운동 실천 Ⅳ . 맺음말 요 약 문 [주 제 어: 김법린, 선학원, 은해사, 피압박민족대회, 한국에서 일본제국주 의 정책보고, 한용운] 김법린(1899-1964)은 경북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다. 그는 고향의 은해 사에 출가한 뒤 한평생을 불교에 헌신한 종교인이기도 하다. 광복 후에는 교육자, 정치가로서 사명을 다했던 한국 근현대사에서 비중있는 인물이다. 김법린의 민족의식 형성에는 누구보다 불교 독립운동가 한용운의 영향이 지대했다. 그는 승려로서 한용운의 가르침을 받고 3․1운동에 참가한 이후, 중국에서 항일투쟁을 계속 하다가 만주독립군과 학업의 기로에서 진학을 택 한 뒤, 마침내 프랑스에 유학해 철학을 전공하였다. 그는 멀리 이국에서도 스 승이 안국동 40번지, 곧 민족불교 수호의 상징인 선학원에 있음을 상기했다. 김법린은 유학 시절에도 독립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발휘하여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피압박민족대회에 참가해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했다. 유 럽에서 김법린의 민족운동 실천 방법은 피압박민족대회 참가 기회를 통해 유 럽인들에게 일제의 실체를 널리 알려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김법린의 ‘브뤼셀 연설’은, 과거에 은사의 지도를 받던 피동적 자세에서 한인대표자격으로서 스 스로의 힘으로 민족운동의 선봉에 섰던 중대한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유럽 사료로써 보완해 본 김법린의 행적은 재유럽 한민족사를 조명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시사한다. 또한 국내외 한국불교민족운동사를 규명하는데 있어서도 간과할 수 없는 업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될 수 있다. * 국학인물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