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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www.i815.or.kr 이달의 독립운동가 북은 (北隱) 구 춘 선 (具春先) 선생 북간도를중심으로한인의권익보호와 국권회복을위해노력하신구춘선선생 북은(北隱) 구춘선(具春先) 선생은 1857년 함경북도 온 성에서 태어났다. 하급군졸을 시작으로 관직에 나아가 궁 궐 수비를 담당하는 등 중앙에서 군관으로 활동한 선생은 청일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와 북간도로 이주하였다. 선생 이 이주할 당시 북간도에는 많은 한인들이 이주하여 황무 지를 개간하고 농사를 지으며 정착하고 있었다. 재만한인 의 열악한 생활상을 목격한 선생은 온성의 두만강 건너편 에 한인보호소와 병영을 설치하여 만주로 이주한 한인들 을보호하였다. 용정으로 이주한 후 캐나다인 선교사 그레이슨을 만나 기독교를 믿기 시작한 선생은 종교활동과 교육활동에 힘 을 쏟았다. 용정중앙교회를 설립하여 기독교를 전파하는 한편, 1909년 김약연(金躍淵), 이동춘(李同春), 정재면(鄭 載冕) 등 당시 북간도의 민족지도자들과 함께 간민교육회 (墾民敎育會)를 조직, 민족교육을 실시함으로써 한인들의 항일애국정신을 고취시켰다. 또한 1913년에 간민교 육회 를 계승하여 재만한인의 자치를 목적으로 간민회(墾民會) 를 조직하고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한편 선생은 중국과 일본의세력이크게미치지못하는왕칭현[汪淸縣] 하마탕 [蛤 塘]에한인마을을개척하고, 하마탕교회와학교를설 립하는 등 종교와 교육을 중심으로 재만한인의 생활안정 을돕고독립의식을고취시키는데기여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선생은 북간도의 기독교 세 력을중심으로민족지도자들과힘을합쳐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1919년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던 북 간도의민족지도자들은 국내에서 3・1만세시위운동이전 개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한인들과 함께 3월 13일 정오 룽 징[龍井]에서3・13만세시위운동을전개하였다. 그리고보 다 체계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조선독립기성총회 (朝鮮獨立期成總會)를 조직하고 다시 대한국민회(大韓國 (1857~1944) 주요공적 1913 간민회부회장역임 1919 간도대한국민회회장역임 1996 건국훈장대통령장추서 ‘아독립운동의최선급무는외교도아니고군사도아닌오직민심통일이다. 아등독립을기성할이천만동포는모두통일적으로써최고기관하에서 외교도하고전쟁도해야한다.’ - 전시팀- 독립기념관7월-내지 2007.6.29 9:57 PM 페이지12 MAC51 2400DPI 175LPI